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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날 Sep 29. 2022

나이를 먹는다는 것

경험이 쌓인다는 것

 어렸을 적 나는 확실히 무던한 아이는 아니었다. 낯가림이 너무 심해서 친척집에 잠시 맡기는 것도 힘들었고, 툭하면 감기에 걸려서 유치원에서 가는 캠프나 소풍을 못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 즈음부터 저장된 기억 속에서 난, 친구들이 낯설었고 환경이 바뀌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때는 나를 좋아하는 남자애와 짝궁이 되어 손을 잡고 걸었는데 그게 싫어서 울기도 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는 새학기가 너무도 싫었다. 매년 반이 바뀌어 모르는 친구들을 사귀어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친구들을 잘 사귀긴했는데 초기 과정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심지어 고등학교 2학년때는 담임쌤을 찾아가서 반을 바꿔달라며 울기도 하였다. (지금으로선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새학기 학교가기는 지금 출근하기보다 싫었고 월요병을 직장인인 지금보다 더 심하게 겪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할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 내가 30여년 간의 인생을 살며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이다. 나는 몇달 전쯤 나이 먹는 것은 참 슬픈일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있다. 죽음과 가까워지고, 주름은 늘어나고, 머리는 나빠지니 말이다. 같은 일을 해도 효율성은 떨어지고, 고집은 세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나의 매력도도 떨어지는구나, 하며 괜시리 서글퍼졌더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갈수록 저 '돌이켜보면 별거 아니었는데'가 묘한 위로가 되었다. 인생 참 내 마음대로 안되고,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직장인의 삶은 고난의 행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인데, ‘돌이켜보니 별거 아니더라’를 떠올리면 묘하게 힘이 났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저 ‘돌이켜보면 별거 아니더라’의 경험이 늘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고난을 넘고 '돌이켜 보니 별거 아니었네',  또 다른 하나의 고난을 넘고 '돌이켜 보니 별거 아니었네', 이러한 생각과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차곡차곡 쌓여서 내 마음속 어딘가에 단단히 자리잡는다. 그리곤 새로운 고난이 찾아왔을때, '이번에도 별거 아닐거야'라며 스스로 다독일 수 있는 힘이 된다.


예전 같았으면 정말로 스트레스 받으며 관뒀을 일도, ‘새학기 친구 사귀는거 이제보니 별거 아니었잖아’, ‘죽을 것 같던 취직준비도 결국 지나갔잖아, 별거 아니었잖아‘, ’세상 끝날 것 같던 첫이별도 별거 아니었잖아‘ 과거의 기억들을 상기시키며 조금만 더 버텨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나의 모습이 꽤나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예전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 위와 같은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꼭 서글프기만 한 일은 아니구나!
과거의 나의 실패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구나!
이 또한 돌이켜보면 별 게 아닌 일이 될 것이고, 그러니 너무 매몰될 필요가 없겠구나!


서른 중반, 하는짓과 생각은 고등학생 때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그때와는 조금 다른 내가 되어있었구나. ‘어른’들이 말하던 짬밥 무시 못한다는게 이런 의미였을까. 예전엔 그 말에 공감이 되진 않았었는데. 짬밥이 주는 힘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된걸까…? 그러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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