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가시지 않는 주말이었다. 밖은 후덥지근 했지만, 맑은 하늘이 집에 있는 나를 유혹했다. 집을 나와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서 공원으로 갔다. 그늘이 있는 곳에서 김밥을 먹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끈적한 기분도 가실 만큼 하늘은 상쾌했다. 문득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서 날씨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커피와 쾌적한 하늘, 거기에 흥미로운 소설책이라면 완벽한 주말이 될 것 같았다. 풍경이 좋은 카페를 검색하다 보니 구미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강과 왜관대교가 보이는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를 타고 곧바로 카페로 출발했다.
카페를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니 예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가지런히 진열된 베이커리와는 다르게 카페는 5일 만에 열리는 장터와 같이 몹시 번잡했다. 빈자리가 없어 10분 이상을 커피를 들고 서성이다가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드디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 소리가 시끄러워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옆 테이블에서 하얀 스커트와 붉은색 재킷을 입은 여자가 골프공을 멀리 보내려면 힘을 빼야 한다며 시범을 보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맞은편에 앉은 젊은 남자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 가며 여자의 손동작을 집중해서 바라보며 이것저것 질문을 해대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는 네 명의 중년 여성이 요즘 여자들은 자기만 알지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며 연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시대가 변해서 어쩔 수 없다는 쪽과 그래도 정도가 있다는 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쾌청한 하늘을 보며 시원한 커피와 함께 아늑한 주말을 보내려 했던 나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언제나 현실은 내 기분이나 계획 따위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 거 같아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에 대해서는 현실은 언제나 심술을 부리곤 한다.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나는 책을 덮고 창을 통해 강과 그 위를 지나는 대교를 바라보았다. 강은 잔물결 하나 없이 고요했고 대교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카페를 나와 목적지도 계획도 없이 걷기 시작했다. 어떤 목적도 계획도 없는 산책은 나에게 되려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생각을 비우고 느끼는 대로 사는 것이 오히려 만족스러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이런 것이 정말 완벽한 주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그렇게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가벼움을 넘어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왼쪽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 속을 살펴봤다. 순간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속에는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었다. 아차...카페에 책을 두고 왔다. 헌 책방에서 비싸게 주고 어렵게 구해 무척이나 아끼던 책이었다. 이미 카페와는 많이 멀어져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카페로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그 심장만큼이나 다리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땀이 이마에서 흐르고 있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