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가주 Dec 20. 2022

그 여름날(4)

짧은 창작 소설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봤다. 예매한 야구경기의 시간보다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우리는 카페를 나와 택시를 타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야구장 앞에 도착해서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민우는 안주로 닭강정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며 편의점 옆에 자리한 닭강정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양의 닭을 팔기 위해 포장된 닭을 한쪽 테이블에 쌓아 두고 있었다. 우리는 그중 하나를 건네받아 계산을 하고 길을 건너 야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응원단의 구령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 열심히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외야석 쪽 좌석은 많이 비어 있었지만 내가 예약한 1루수 쪽 자리는 꽉 차있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좌석은 성인 남자가 앉기에는 매우 좁고 협소했다. 우리 좌석과는 다르게 포수 뒤편에 위치한 좌석은 넓고 테이블까지 갖추고 있어 한층 여유로워 보였다. 늦게 예약해 좋은 자리를 잡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며 맥주를 그에게 건넸다. 


 경기는 3회를 지나고 있었고 홈팀은 지고 있었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었다. 나도 기운을 받아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하다 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팀의 승리라는 목적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스포츠를 찾는 이유는 복잡한 삶을 떠나 단순명료하고 깔끔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홈팀의 승리와는 상관이 없었고 그건 민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하나로 합쳐진 큰 덩어리가 내뿜는 기운에 우리는 취했다. 사 온 맥주는 이른 시간에 마셔버렸다. 취기인지 흥분인지 모를 열기가 느껴졌다.

 갑자기 민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여기에 있는 것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나직하게 웅얼거렸다. 이상하게도 시끄러운 함성소리 속에서도 말만은 또렷이 들렸다. 평소와 다른 차분한 말투. 바닥으로 힘없이 늘어뜨린 팔. 허공을 바라보는 초점 없는 눈동자를 보며 그가 술기운에 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은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 박혔다. 이까짓 야구장에 와서 닭강정과 맥주를 먹으며 다 같이 유치한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것이 그렇게 감동받을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조금은 딱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동정이라는 감정을 느낀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기의 인생도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하는 인간이 타인의 삶에 그것도 친구의 삶에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경기는 반전 없이 홈팀의 패배로 끝났다. 경기가 끝나고도 우리는 한동안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다 타버린 숯에 옅게 남아있는 흥분이 아직 몸속에 남아있어 경기장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 여운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일부 사람들만 남아있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야구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불현듯 지금의 모습을 남겨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야구 운동장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긴 팔을 최대한 뻗어 우리가 잘 나오게 사진을 찍었다. 서로 각자의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며 웃기도 했지만 어쩐지 조금 쓸쓸해졌다. 행복한 시간은 곧 끝이 날 것이고 사진으로 남긴다고 하더라도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온전히 다시 느끼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이 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고 인생 대부분은 인내의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상기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 여름날(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