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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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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Feb 02. 2024

내가 하는 연극을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이란 무엇인가?

나는 N잡러다.


매일 평일 오전에는 요가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드문드문 연극연출가로 활동한다. 또, 3주에 한 번 주말 저녁에는 N플랫폼의 독립출판 모임장으로, 소속된 극단에서는 그래픽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간헐적으로 외부에 취재를 다니며 원고를 쓰는 프리랜서 작가활동을 한다. 이렇듯 여러 가지 '일'을 통해 수입을 얻고 자아실현을 하고 있는데, 가끔은 그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어 일에 대한 정의를 자주 되짚는 편이다.


과연 '일'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는 충족되어야 한다.

1. 자아실현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2. 생계수단이 되어야 한다.                               


요가도 그렇고, 연극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잔재주가 많은 편이라 야금야금 하던 취미가 기회와 운을 요리죠리 잘 만나 일이 된 케이스. 취미와 일이고 일이 취미인 것 같은, 아슬아슬하게 행운이 따르는 줄다리기를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해냈다. 겉보기에는 요즘 트렌드에 걸맞게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럴싸하게 밸런스가 맞춰진 삶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무지개를 쫓는 소년마냥 멋진 사람으로 비치는 그 시선을 가끔씩 즐기기도 한다.


'나 실은 보이는 것처럼 살고 있지 않아'

이런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언젠가 다시 수면 위 올라왔을 때 성취할 목표로 두기도 한다. 밝은 이미지를 꺼내 쓰는 걸 워낙 잘하기에 티가 많이 안 날 뿐, 내 속은 종종 불안으로 타들어간다. 왜냐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불안을 해소하고자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일을 쳐내며 일하는 순간으로 나를 몰아넣는다.


여러 가지 일들 중 가장 나를 애매하게 만드는 것은 '연극'이다. 정의 1번에 충실하게 가장 크게 자아실현 도파민을 주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정의 2번에 가장 반하는 일. 되려 가끔씩은 연출의 역할을 책임지고자 제작비라는 명목아래 내가 모은 목돈을 가볍게 마이너스시킨다. 어느 해에는 일이 되고, 어느 해에는 일이 되지 못하는 녀석.


그렇지만 일이 되는 순간에 내가 느끼는 도파민이 너무 커서 포기할까 싶다가도 포기할 수 없는 연극.

지칠만하면, '지치길 기다렸다! 옛다, 제작지원금!'이라며 날 들었다 놨다 하는 연극.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그래도 좋겠다는 부러움의 시선을 받는 연극.

'그 일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지는 못합니다만...'이라는 말이 목구멍에 덜컥 걸리는 연극.

사실 힘든 순간이 더 많은 연극.

힘들다고 내색하면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그런 말은 삼켜누르게 만드는 연극.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기에 결국 사랑으로 품을 수밖에 없는 연극.


연극을 처음 시작한 건 대학 동아리였다. 동아리 가두모집이 한창이던 대학교 2학년 봄, 수업이 끝나고 정문으로 지나가는 길에 '신입생이세요?'라는 말과 함께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그 길로 나는 연극동아리의 일원이 되어 (결코 나를 어리게 봐준 게 기분 좋아서가 아니다) 결국엔 동아리회장까지 하고 대학을 졸업했다. 당시에 왜 그렇게 연극이 좋았을까 생각하면, 아마도 방학마다 시간을 들이고 애써서 만든 연극이 무대 위에서 한 순간에 휘발되는 게 아깝고 애틋해서 나라도 그 찰나를 가슴에 품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끝나버린 무대는 점점 흐릿해지고, 기억해 내려면 다시 공연을 하는 수밖에.


또, 연극이 진행되는 극장이란 공간도 참 좋아했는데, 소극장 관리 학생이었던 나의 비밀스러운 취미는 스포트라이트가 사라진 빈 극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사색하는 것이었다. 은은한 조명아래 지하공간 특유의 습한 내음이 배긴 좌석에 앉아 고요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잠시 어디론가 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나는 인생에서 딱 한 번 대학교 1학년 때 하고 싶은 게 없어 방황했다. 미대입시를 실패하고 재수해 들어간 영문과 공부가 알레르기가 날만큼 나와 맞지 않았다. 그런데, 연극동아리에 들어가고 나서부턴 다시 많은 것들이 하고 싶어졌다. 무대 위에 서는 것도, 그 무대를 만드는 것도, 무대 위에서 펼쳐질 이야기를 쓰는 것도, 그 무대를 알리는 것도. 그렇게 학교를 자퇴할까 고민하며 학부도 제대로 졸업할지 몰랐던 내가 결국엔 서울로 상경해 대학원에서 연기를 공부했다.


비전공자 연극동아리경험을  포장해 대학원에 들어간 나는 학부 생활을    하는  마냥 학부 수업도 듣고, 대학원 수업도 듣고, 조교도 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나 싶은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단기간에 전문성을 채우려다 보니 부족함은 물론이고     없을  같은 한계도 많이 느꼈다. 게다가 그땐  믿고 그렇게 밤을 많이 새웠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내가 종종 체력이 버거운 이유는  그때 에너지를 당겨 썼기 때문이 분명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약한 시간. 사람이 전쟁을 함께 하면 전우애가 생긴다고. 생각해 보니 지금 나와 연극하는 애틋한 동료들은 대부분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다.


동아리부터 시작하면 십 년 넘게 했지만, 연극을 정말 '일'로서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건 연극을 한지 딱 십 년째 되던 해였다. 코로나19에 직격타를 맞은 공연계에 비대면으로 예술을 해보라는 지원사업이 생겼다. 대면예술인 연극을 어떻게 비대면으로 만드냐며 웃기고 있네 싶었지만, 결국 급한 사람이 창의력을 쥐어짜 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닌가. 마침 연극으로 만들려고 준비 중이던 독립출판물을 글과 그림, (배우의) 목소리가 있는 전시로 발전시켜 보기로 했다.


'관(람)객이 배우와 대면하지 않으면 이게 바로 비대면 예술이지 뭐가 비대면 예술이냐?'


그렇게 인생 첫 지원사업을 따내고나서야 진정한 자아실현과 생계를 해결하는 일로서의 연극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지난 3년간 약 4,500만 원가량의 국가지원금이 연극을 나에게 일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연말마다 지원서를 쓸 때면 제발 다음 해에는 연극이 일과 더 가까워지길~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는 눈이 흐릿하고, 핑크빛으로 시려질 만큼 간절하게 기도한다.


생계를 해결해주지 못하던 연극이 일이 되는 모습이 너무 즐거웠던 걸까? 나는 겁도 없이 일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내가 모은 돈을 제작비로 사용했다. (내 심장의 크기를 재본적은 없지만, 작진 않은 것 같다) 신나게 공연하고, 마이너스가 된 잔고를 마주하면 정신을 딱 차렸어야 했는데, 이게 왜 감당 가능한 숫자들로 보였을까? 게다가 이놈의 연극이 나랑 밀당을 제대로 하는지, 통장을 보고 '이번엔 좀 메꾸려면 시간이 걸리겠네' 생각할 때쯤엔 내가 벌인 사고(?)가 새로운 기회를 물어왔다.


자체제작으로 준비하던 공연에 사용하려고 촬영해 둔 영상이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덕분에 상금의 일부로 공연을 만들고, 그 공연 덕분에 또 다른 지원사업을 따내고, 지원사업 덕분에 연극에서 다큐까지 제작해 보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탄생하는 모습이 이것 참 결국 사람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가둬버렸다. 분명 연극이 일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또 연극을 하고 있단 말이다.


생계가 해결 가능한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기초예술에 가까운 산업군이고, 그렇기에 더더욱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의미와 이유를 찾아야 하는 분야인데 어떻게든 내 삶에서 연극이 일인 듯 일이 아닌 듯 굴러가는 게 나는 너무 신기하다. 생각해 보면 신진예술가 도입 과정에서 마주한 운을 내가 참 잘 잡아챘다. 아, 그런데 요즘엔 초심자의 행운을 거진 다 쓴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결론은 미래가 불안하다.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에 좋아하는 일로 행복하려면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쓰여있다.

1. 그 분야에서 최고 일인자가 되는 길                              

2. 최고가 되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오타쿠처럼 자기만족을 위하여 빠져 사는 길                              

3. 다른 길을 통해 경제적 여유를 마련한 뒤 그 돈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는 길                              


그런데 그 일을 '일'답게, 오래오래 하려면 결국 1번의 길을 걸으려고 애써야 하지 않을까?


대학원 생활이 끝나길 기다렸다듯 만난 공백기에 나는,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연극을 미워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 본능적으로 3번 길을 찾았다. 운이 좋게 만난 다른 길인 요가가 생각보다 잘 맞아서 그런가. 연극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요가로 풀고, 요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연극으로 풀면서 그럭저럭 잘 지냈다. 아주 가끔 두 가지 일이 벅찰 때면 숨 쉴 구멍을 열겠다는 요량으로 작은 합리화와 함께 최선을 덜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요령껏 이 길을 뚜방뚜방 걸어오던 내가 요즘은 신진예술가로 잘(?) 안착한 덕분인지 조금씩 1번 길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연극을 일로 하려면, 내 능력을 더 키워야겠지.


결국, 미워할 수 없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제대로 된 사랑을 마주하려면 더 애써야 한다. 내 돈으로 제작해 서로가 눈치 볼 수밖에 없는 프로덕션을 몇 번 경험한 후배 한 명은 정말 사랑스럽게도 나에게 '이제 선배님의 연극세계의 지속성을 위해 자체제작은 하지 마십쇼.' 라는 조언을 건넸다. 그 말이 참 애틋하고 고마우면서도, '지속하기 위해 자체제작을 하는 걸 수도 있잖아, 이 자식아'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내뱉지는 않았다.


이제 갓 시작한 2024년. 사실 작년 연말에 썼던 지원사업은 죄다 떨어졌다. 타로카드에서 가장 지원금이 큰 프로젝트 하나는 붙는다고 했는데, 그것도 아쉽게(?) 떨어졌다. (역시 타로는 믿을게 못 된다)


그렇다 보니, 서른다섯의 나에게 연극은 당장 두 가지를 충족하는 '일'이 될 수 있을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사실 먼 미래에 내가 변하고 또 변해서 툭 하고 연극을 그만둬버릴까 무서울 때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는 건 여지껏 나라는 사람은 절대로 과거의 내가 만들어온 일을 책임감 없이 그냥 내버려 두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두더라도 분명 지금의 내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가져오거나, 아니면 과거의 내가 그랬듯 재본적도 없는 심장 크기를 앞세워 (내 돈을 투자해서라도?) 새로운 기회를 만들겠지. (사실 이미 그렇게 또 공연을 했다) 그리고 미래의 나도 불의의 사고로 심장이 작아지지 않는 이상 나의 '일'을 그냥 내버려두진 않겠지.


나는 의리와 책임감,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연극에 대한) 의리와 책임감, 회복탄력성을 믿으며 일단 '일'이라고 생각하련다.


"네, 저는 N잡러인데요. 연극연출가로 활동하면서~ 요가강사로 블라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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