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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Feb 12. 2024

요가매트 위에 서는 마음

잘하는 일에 대한 마음가짐

나는 매주 평일 오전에는 요가매트 위에 선다.

그것도 맨 앞 줄, 한가운데 자리. 그리고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많은 눈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인사한다.


나마스떼~


요가를 업으로 한지는 어느덧 5년 차. 기억도 안나는 언제가부터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요가강사가 있었다. 사실 20대의 버킷리스트는 아니었다. 출산과 육아 후 제2의 직업을 갖게 될 때 막연하게 도전해 봐야지 생각했던 40대의 버킷리스트. 그런 요가를 십 년이나 당겨온 건 (내가 결혼을 못해서가 아니라!) 삼십 대의 시작부터 당장 생계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국립극단 조연출이 생활이 끝나가던 이십 대의 끝자락. 당장 낼모레로 다가온 서른이 막막했던 나는 한 달 반치 급여로 받은 약 삼백만 원가량의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했다. 그저 흘러가듯 생활비로 쓰자니 아깝고, 어디 여행이라도 가자니 지금 상황에 사치를 부리는 것 같고, 딱 미래를 위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요가지도자 자격증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 지금인가…’


앞자리가 바뀌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를 가져다주는 것 같기도 했다. ‘에레이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자격증 코스에 등록하고 나니 남은 것은 단돈 십만 원. 그 길로 요가복을 몇 벌 사고 집으로 돌아와 컵라면을 홀짝홀짝 먹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는 두 분 다 갖고 있지 않은 유연함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나에게 물려주셨다. 덕분에 나는 큰 노력 없이도 외관상의 요가동작을 꽤나 있어 보이게 해내는 재능이 있었다. 게다가 연극하면서 연기는 물론이고, 대본을 쓰고, 장면을 연출하며 배우들과 소통하는 작업을 계속해와서 그런가. 리딩멘트를 구성하고,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가르치는 것 또한 무던하게 할 수 있었다. 연극으로 단련된 발성과 순발력을 제대로 발휘한 곳이 바로 매트 위. 한 시간의 수업을 한 시간의 독백연기라고 생각하면 재미까지 있었달까? 난 요가강사로 일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80%만 노력하면, 100%가 발휘되는 기분. 사실 꽤나 좋았다.


하지만, 재능이란 분명 축복받은 것이면서 동시에 굉장히 위험하다.


대학원 시절 교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너희가 연극을 진짜로 좋아하는지 부딪혀봐야 한다. 잘하는 걸 좋아한다고 착각하다가, 잘 '못'하게 되면 좋아하는 마음이 변한다. 우리는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연극예술을 정말 좋아해야지만 오래도록 할 수 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 있는 동안,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확인해 봐라."


잘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면, 잘하지 못할 때 느끼는 상실감이 결국엔 좋아하는 마음을 먹어버린다는 말은 연극뿐만 아니라, 요가를 할 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다. 어쩌면 요가를 하는 내 마음은 '큰 노력을 행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취할 수 있다'는 오만함 속에서 그 기조를 계속 유지하고자 이어졌던 것 같기도. 잘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잘하기 위해. 재능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분에 계속 머물고 싶은 마음에. 나는 최소한(?)의 노력을 일정하게 해 왔던 것 같다.  


연극보다 많은 애정을 주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느껴서 그럴까? 요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주인공의 입장에선 고맙고, 미안한 드라마  서브남주를 보는  같다. (서브남주는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다들 차기작에선 주인공이 되더라. 여담으로, 나도 올해는 요가를 소재로  연극을 만들었다.) 사실 종종 유연성만 믿고 동작을 하다가 다치기도 하는데, 그럴 때도 억울한 느낌이 든다기보다는 이만큼만 다쳐서 다행이다 싶거나  업보라 생각한다. 재능을 믿고, 조금  신경쓰지 않은 것에 대한 인과응보. 그래서 그런가. 나는 2-3  요가강사라면  번씩 겪는다는  흔한 요태기(요가 권태기)   없이 5  요가지도자가 되었다. (요태기까지 겪으면 양심에 가책이 느껴질까봐 그런  같다)


큰 기조 없이. 늘 한결같이.

연극과 달리, 내 마음을 애태우지 않는 요가.


요가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는 일이다. 연극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생계를 해결해 주고, 내가 가진 장점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단점인 높은 텐션을 낮춰주고, 급한 마음을 눌러준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모습인 차분하고 깊은 예슬을 꺼내준다. 게다가 요가를 하며 만나는 어르신 회원님들은 얼마나 나의 자존감 충전소 역할을 톡톡히 해주시는지. 화장기가 없어 얼굴 같지 않은 얼굴도 전날 맥주를 마셔 나온 볼록한 뱃살도, 어르신 회원님의 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의 아름다움으로 비쳐 늘 나를 예쁘다 해주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단련하고 있는 요가근력과 요가지구력이 있는게 아닐까싶다.


이렇게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요가는 내가 잘하는 일이다. 잘하는 일의 혜택을 톡톡히 받고 있는 나는, 이 일을 딱 지금처럼만 앞으로도 계속 잘하고 싶다. 그러려면 요가가 서운해하지 않을 만큼의 애정은 내가 먼저 챙기고, 꾸준하게 줘야겠지. (방금도 장바구니에 요가관련 도서를 하나 넣었다, 올해는 친구와 맥주요가 이벤트도 기획해보기로 했다)


나는 요가수업을 마무리할 때 이런 인사를 나눈다. "오늘도 제가 가진 긍정의 에너지를 고이고이 접어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인사를 하는 내 속마음은 이렇다. '오늘도 제가 가진 재능을 백번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 알라신, 부처님, 삼신할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 감사함 잊지 않고 진심으로 매트 위에 올라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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