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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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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크무슈 Feb 13. 2024

보통의 이유로 일합니다




일을 한다.

매일매일 일을 한다.


언제쯤이면 이 고통을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정년이라는 단어는 내 선택지에 없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60살까지 회사를 다닐 수가 있는지. 그렇다고 부업이라든지 투자라든지 대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아니. 여전히 뾰족한 수가 없어서, 5천 원 치 로또 용지에 간절히 부탁해 본다.



이번 주에도 대답이 없다.


나는 8년 차 회사원이다.

맥주를 좋아해 맥주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실체를 정의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어,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어.. 이것저것 해요." 외엔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다. (길게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지금 회사로 이직한 지는 2년이 넘었다. 주변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며 아직까지 많이들 부러워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지 않아요?"


아니야. 아니라고.


여전히 아침에는 일어나기 힘들고, 지하철은 증오의 그릇이고, 아침저녁으로 커피가 없으면 슬프고, 점심시간엔 잠깐이라도 몸 뉘일 곳을 찾아 헤맨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일을 한다. 회사를 옮겼다고 내 생활이 한순간에 우아해질까.


듣기 싫은 알람 소리에 의식을 찾는다. '왜 벌써 아침일까'란 물음에 대답할 수 없어 겨우 일어나 앉는다. 열다섯 개쯤 맞춰놓은 알람을 끄고, 커튼을 걷어 창문을 연 후 느릿느릿 이불 정리를 한다.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이불 정리부터 하라'라고. 저는 세상씩이나 바꿀 사람은 아니니, 이따 저녁에 몸져누울 내 기분 정도만 바꿀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겨울엔 아 추워, 여름엔 아 더워를 외치며 샤워를 하러 간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5분 정도 뜨거운 물을 맞으며 서 있으면 서서히 정신이 돌아온다. 보통 수도요금 걱정에 정신이 돌아온다. 언젠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아침에 전화영어를 했던 적이 있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끝내고, 전화기를 노려보다 벨이 울리면 15분 정도 떠들고 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약간은 멍한 정신상태로, 반대로 그곳은 저녁이라 조금은 감성적인 수화기 너머의 미국인과 떠들고 나면 잔뜩 상기된다. 네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고 되묻느라 바빠서, 또 내가 뱉은 영어가 부끄러워서. 전화영어를 했던 그 한 달은 오전 내내 각성 상태였다. 긴장이 심한 날에는 바쁜 척, 아픈 척을 하며 피했던 적도 있다.


나는 이날 이후 운동이든 공부든 어떤 것이든, 아침에 자기 계발을 하는 직장인들은 미친 사람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렇지만 존경합니다. 파이팅.)


출근은 시공간을 막론하고 괴로웠다. 서울에서도,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버지니아에서도, 쾰른에서도.


우리는 모두 똑같이, 보통의 이유로 일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전세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자동차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휴대폰 할부도 있다. 내가 재산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전부 온전히 내 것이 아니군.


오늘은 왜인지 오후 4시부터 떡볶이에 튀김이 먹고 싶었다.

내 기분에 따라서 먹고 싶은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어서 일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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