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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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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용신 Feb 14. 2024

처음으로 드라마를 보고 화가 났다.

일 #1

나는 일을 하는 이유가 크게 3가지 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그리고 권력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 건 생계와 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함일 것이고, 

명예는 내가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 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권력은, 내가 하고싶은 일을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결정권이라고 정의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트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야말로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까지 모두 손에 거머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명의 성공한 인생뒤에 실패한 백만명이 있다는걸, 20대의 나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동아리의 첫 성공이, 내가 나를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사건이 되었던것 같다. 공연이 기획되고 준비하는데 외부대관을 진행하면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로서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 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연합동아리를 만들게 되었다. 


나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무작정 전국에서 활동하는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게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난 패기가 넘쳤다) 

17개의 오케스트라에서 연락이 왔고, 나중에는 42군데의 오케스트라와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의 자기소개는 학교나 전공, 학번이 아니였다. 우리가 어떤 악기를 연주하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우리가 이 생활을 얼마나 즐겁게 하고 있는지였다. 함께 모여 고민과 성공한 콘서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가 서로의 힘듬을 공감한다는 자체가 의미있었다. 우스갯 소리로 회장들끼리모여 연주회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 이야기가 나를 움직였다. ‘현실로 만들어보자’ 회장뿐만아니라 각 동아리에서 책임감있고 악기를 잘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교류 할 수 있도 록 규모를 더 키운 연합공연을 기획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콘텐츠를 만나고, 정보를 모으고, 다양한 공공기관 사람들이 나의 말을 경청 해주고. 

그 과정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에 연락을 받아 DDP에서 대학생과 함께 하는 플래시몹 을 진행하고, 예술의전당에서 정명훈 지휘자님과 함께 특별한 앵콜 무대를 만들기까지. 


이 경험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추진력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말도 안되는 성취감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달콤한 성취감을 일찍 맛본 나는 졸업 후 취직 준비 생활이 굉장히 쉬운 길로 보였다. 

‘남들이 간 길을 내가 또 간다고? 

아니 나는 길을 만들거야. 나는 할 수 있어’ 

자신감을 바탕으로 지인들과 함께 스타트업 공연기획사를 만들었다. 


막연히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욕심과 스타트업을 성공시킴으로서 얻게 되는 명예,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권력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이미 아무것도 없던 백지 상태에서 대학생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냈던 나이기에, 어릴 적 꿈꾸었던 뉴스에서 인터뷰하는 젊은 문화 CEO가 곧 나의 미래가 될 것만 같았다. 


처음엔 순조로웠다. 다양한 기업과 콜라보하고, 재미난 공연과 이벤트를 하나 둘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교 동아리와 회사생활은 달랐다. 돈이 계속 들어갔다.  취미였던 동아리는 돈을 쓰는 구조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향에서 나의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있었지만, 회사는 수익을 내야했다.


드라마가 아닌 진짜 현실 속 스타트업. 

내가 "스타트업: 드라마를 보며 화가 났던 건 이러한 현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서 였던 것 같다.


계속해서 적자가 나고, 적자가 나니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니 점점 콘텐트를 만들기 어려워졌다. 좋은 마음으로 함께 일을 시작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났다. 내가 정말 믿었던 사람과 크게 싸우고 다신 인생에서 만나지 말자고 말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시간과 돈(일부는 가족들의 지원금까지) 모두 날렸다. 


힘든 마음을 달래고자 만난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너는 네가 하고싶은 일을 하자나. 부럽다.”
 “용신이야 뭐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다른 곳이랑 같이 공연만든다며! 역시 대단해” 

친구를 만나고 온 날이면 집에 돌아와 울지도 못하고 이불속에 들어가 퀭한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스타트업을 하기에 부럽다고 말하는 친구들의 이야기.
 

주위 친구들의 대기업 입사소식.
 그 때 나에게 느껴지는 불안감과 공허함.
 

아무것도 얻는 것도 없고, 그 어느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생활. 너무나도 힘들었고 더 이상 집에 돈을 벌리고 싶지도 않았다. 

29살을 맞이한 해 10월. 

30살이라는 시간까지 단 두 달만을 남겨두고 나는 스타트업을 그만 두었다. 

아무 소속이 없는 백수. 


아침에 일어나 카페로 나가 이력서를 써보고, 집에 돌아와 게임을 하다가 밥을 먹고 잠드는 생활, 

단 한 번도 그렇게 생산성없는 시간을 가져 본적이 없었다. 이렇게 무기력했던 적이 없었다. 

이제는 꿈 속에서조차, 성공해서 인터뷰하는 곽용신을 꿈 꿀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나의 실패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른이 되었다. 


아마도 드라마를 보면서 화가났던건, 실패를 인정하고 아쉬워했던 나에게 대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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