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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Mar 13. 2024

이별에 취약하지만, 이별이 두렵지는 않아

달력을 보아하니,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났다.

일 년 전 이맘때, 손끝을 시리게 만드는 추위가 조금 사그라들고 꽃잎이 얼굴을 내밀 듯했던 날. 늘상 뭘 먹고 싶냐는 질문에 일말에 고민도 없이 제육이라고 말하던 그가 그날 따라 파스타를 먹자고 했다. 이상했다. 3년 차 커플인 우리에게 파스타는 유독 꽂히는 날이 아닌 이상, 기념일이나 생일처럼 특별한 날에 먹는 메뉴였다. 여기서부터 눈치를 채고 아프단 핑계를 대면서 데이트를 취소했어야 했는데, 파스타 먹자는 말에 혼자 기뻐 방방방 뛰다 예상 못 한 헤어짐에 어퍼컷을 맞았다.


퍽!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요조숙녀라는 드라마 속 사랑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김희선을 보면서 삼십 대에는 내가 꾸린 가정이 있을 거로 생각해왔다. 열심히 일하는 이십 대를 후회 없이 보내고, 결혼하는 삼십 대의 삶이 어린 눈에 멋지게 보였던 걸까. 어쩌면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셨다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감과 동시에 새롭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엄마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열정적으로 일하다, 가정에 충실한 일정 시기를 보내고, 사십 대가 되면 다시 제2의 직업을 찾아 행복하게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 막연하면서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오랜 나의 목표였다.


그런데 젠장. 남편과 자녀, 일이라는 두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거라 꿈꾸던 내가 이십 대의 끝자락에 덜컥 혼자가 되었다. 살짝 틀어진 인생 계획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정비하기 위해, 서른의 나는 정말 열심히 소개팅에 임했다. 그뿐인가. 다양한 장소와 모임에서도 호감이 느껴지는 누군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혹자는 남녀관계는 전통적으로 여자가 적극적이면 망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건 과학적 진리인지(?) 인연을 찾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그렇게 약 일 년을 고스란히 감정을 소모하는데 쓰고 지쳐버린 나는 그해 연말 친구들과 스키장으로 가는 길목. 창문을 열고 고속도로에 냅다 마음의 소리를 질렀다.


“내년에는 절~대~로~ 소개팅 안~할~거~야~”


될 대로 되라며! 사랑둥이인 내가 연애를 반쯤 포기한 상태로 떠난 스키장.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리프트를 타기 위해 뒤엉킨 사람들 사이에서 우연히 딱 둘만 타게 된 리프트. 어쩌다 보니 공중에서 여러 번 멈춘 리프트 덕분에 우리는 하늘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땅 위에서 연인이 되었다. 가타부타 한 여러 이유들로 연애의 시작을 마음먹는 것은 꽤나 힘들었다. 6살의 나이 차 (이럴 수가, 그는 생각보다 노안이었다),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복무 중인 계약직 직업군인 (이럴 수가, 나도 내가 삼십 대에 곰신이 될 줄 몰랐다), 나의 결혼 적령기 (이럴 수가, 난 결혼하고 싶단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나의 애정사업을 궁금해하는 엄마에게 은근슬쩍 재밌으라고 그의 나이를 이야기했다가 니 나이 서른에 소꿉놀이 하고 싶냐는 말을 듣고 아주 신속하게 전화 끊었으면 말 다했지 뭐.


서른. 이제 연애 리허설은 끝낼 나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다가 빠르게 안 맞아서 헤어지면 모를까, 깊은 마음으로 어중간하게 만나다 이별하면 바로 결혼 적령기의 악수로 남을 연애가 되지 않을까. 여섯 살 많은 오빠도 아니고, 여섯 살 어린 동생을 내가 이성으로 만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의 적극적인 구애는 지난날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던 마음에 지쳐 무방비 상태가 된 나를 거침없이 뚫고 들어왔다. 더불어 일 년 중 내가 가장 가슴 설레 하는 연말 분위기까지 한몫하면서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좋았다.

내 인생에 이 추억이 없다면, 그 무엇보다 아쉽고 후회될 만큼.


열심히 사랑했다. 


사랑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희노애락을 비롯한 모든 과정이 다 괜찮았다. 행복은 행복대로 예뻤고, 중간중간 끼어있는 다툼이 마무리될 때면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 그전에 해왔던 연애를 오답노트 삼아 만든, 최고의 답변들을 그와 나눴다. 연애 하는 내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당탕탕한 과거의 내가 아니라, 그때보다 조금 더 다듬어진 지금의 나라 다행이다 싶었다. 이별로 격하게 힘들어하는 과거의 나에게 다가가, 귓가에 살짝 이 말을 귀띔해주고 싶었다.


'이 사람을 만날 줄 알았다면, 혼자 지냈던 시간을 조금 덜 힘들게 보낼걸. 너는 곧 아주 멋진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기에 조금만 덜 아파라, 조금만 덜 버거워해라.'


 "예슬님, 미안해요"


헤어짐을 말하는 그의 입을 막으며 시간을 멈추고 싶긴 했지만, 그가 힘겹게 꺼낸 결정은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는 나에게 좋은 친구이자(그는 정말이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했다), 든든한 지원군(내가 하는 모든 일을 다 멋있다고 해줬다), 같이 장난을 칠 수 있는 존재(내가 내뱉는 모든 드립을 거진 다 받아쳐주는 사람이었다)였다. 삼십 대 초중반 나의 삶이 여태껏 내가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마음에 들고, 반짝이고, 작은 성취로 가득했던 이유는 다 그가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 고민 없이 말할 수 있을 만큼.


그저 내 인생에 잠시 그를 잘 빌렸다가 돌려줄 때가 되었던 것일 뿐이다. 그 뿐이다.

좋았던 찰나를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 그 빈자리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난 실연은 또 어떻게 회복했던가. 누구나 경험하는 여러 가지 인생의 난관 중 나는 이별을 가장 고난도 시련이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학창 시절 교우 관계, 미대입시 실패, 재수, 진로 고민, 금전 문제, 이상 소견,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질 만큼 불안했던 게 사랑의 상실이었다.


"아가씨는 이별을 거의 사별처럼 하는 사람이네. 한 번 헤어지면 정말 감정적으로 누군가의 죽음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보다" 


언젠가 내가 봤던 사주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언어로 듣고 나니, 조금은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던 걸까. 세 번째 사별, 아니 이별은 이미 알고 있는 미래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 이주일은 제대로 못 먹겠지? 지난번처럼 대상포진이 올라오면 어떡하지. 주변에서 또 걱정을 많이 하겠군. 이번에는 요가하다 픽 쓰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젠 강사로 매트 위에 서 있는 거라 회원님들 놀라신다. 엄마가 아침점심저녁으로 전화할 테고, 친구들은 날 혼자 두지 않으려 우리 집에 며칠씩 자고 가겠지.' 이별의 슬픔만큼 실연상태에서 비정상적일 나와 그런 나를 신경 쓸 사람들이 떠올랐다.


헤어진 다음 날, 그에게서 마지막 메시지가 왔다. 한참을 내려 읽어야 하는 장문의 카톡 안에는 이 연애의 끝을 아름답게 맺어주는 덕담들이 가득했다. 특히 '항상 건강하고 항상 명랑하고 항상 사랑하고 항상 행복하고 항상 예슬하길 기도한다'라는 문장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마지막까지 취향 저격 라임 뭐냐고... 이별 주제에 왜 그렇게 예쁘고 난리인지.


한참을 울다 보니 배가 고팠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사람인지라, 과거 이별 후유증  나는 음식만 봐도 토할  같다며 화장실로 달려들어 가는 사람이었다. 건강하지 못한 생활 속으로 나를 방치해두는 것을 스스로 자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흘린 눈물만큼 물을 마셨고, 밥도 먹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음식물의 이질감이 견딜만한 나를 보며, 어쩌면 지금 '내가 좋은 엔딩을 경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일도 그와 영상통화를 하며 고단한 하루의 끝을 마무리할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취향저격 라임으로 엔딩을 장식한 연애라도  인생에 있는게 어딘가. 아마 나는 이런 결말을 누군가 귀띔해줬더라도, 그를 만났을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따라가다보니 이별에 한없이 취약한 내가 조금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스스로 강한 사람이라면, 사랑했던 사람을 굳이 탓하지 않아도 이별을  이겨낼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만 더 견고해진다면, 수학공식처럼 명료하지 않을 헤어진 어떤 이유를 일부러 애써 찾을 필요도 없이. 그저 사랑의 부재가 나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좋은 기억으로 그를 과거에  남겨줄  있을  같았다. 아련하고 눈부신 시절인연으로.


먼저 내 손을 놔버린 그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한껏 연약해진 나를 열심히 돌봤다. 나의 회복탄력성을 믿으며, 때로는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스스로 견디는 시간을 마냥 무서워하지 않기로 했다. "저는 요즘 심신 미약 상태입니다. 사실 매우 비정상인이에요. 저 우울합니다. 저를 혼자 두면 안 돼요. 제정신 아닙니다. 제가 지금 뭘 결정한다면 말려주세요. 기분이 오락가락합니다" 이런 말을 당당하게 뱉고 다녔다. 어딘가 고장 난 엉터리 같은 나의 모습에 누군가는 괜찮냐는 질문을 하기도, 누군가는 웃음을 참기도, 누군가는 안쓰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힘든 건 여전했지만, 힘든 것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비록 내가 더는 그의 삶에서 매일매일 궁금한 존재는 아니겠지만, 언젠가 하루 쯤 떠올릴 때 참 멋있었고 여전히 멋진 사람으로 남고 싶기에 열심히 살고 싶었다. 헤어져도 내 일상은 돌아가야 하기에 노트북 자판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지원사업 기획안을 썼다. 헤어져도 요가수업은 해야 하기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고난이도 수업에 몸을 맡겼다. 헤어져도 언젠가 결혼은 해야 하니까 소개팅시장에 나를 다시 내던졌다.


'이 사람을 만날 줄 알았다면, 혼자 지냈던 시간을 조금 덜 힘들게 보낼걸. 너는 곧 아주 멋진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기에 조금만 덜 아파라, 조금만 덜 버거워해라.'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다 했던 말을 지금의 나에게 필요할 때마다 속삭여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감히 '이별이 두렵지 않다'는 문장도 써 보았다.

이별이 지나간 자리에도 사랑을 잃지 않은 건강한 내가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내가 써내려간 문장들이 나를 잘 지켜주어 미래의 나는 왠지 그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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