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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Feb 14. 2019

여전히 살아볼 만하다.

『경애의 마음』(김금희, 창비, 2019)

                                                                                                                                          

‘인기’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에 쏠리는 대중의 높은 관심이나 좋아하는 기운’(네이버 국어사전)이다.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한 마음은 한 사람의 독점을 허락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긴밀하고 돈독한 관계에서 형성되는 우정, 우애, 사랑의 마음은 그래서 인기와 공존하기 어렵다. 인기 있는 사람은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없는 사람은 없다는 이유로 외로움은 늘 따르기 마련이다.


『경애의 마음』(김금희, 창비, 2019)은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상수는 인기가 없기도 하고 아주 많기도 하다. 현실에선 ‘반도 미싱’ 회사에서 무능하고 존재감 없는 영업사원이자 부서원 없는 팀의 팀장이다. 반면 ‘SNS’에서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 연애상담 페이지의 운영자다.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지에서 ‘언니’라는 아이디를 쓴다. 실체가 없는 가상 무대에서 그는 훨훨 난다. 눈물을 자주 흘리고 감정이입이 잘 되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맘껏 발휘하며 SNS 안에서만 현실을 접촉해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다. 그곳은 “걸핏하면 고독사를 상상하는 상수에게 단 하나 삶의 의미였다.”(p.34)


더 외로운 한 사람, “모든 것을 느끼는 마음 따위는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p.72)는 경애.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화재사고로 인해 마음을 나눈 E를 비롯해 영화 동호회 친구 56명을 잃었다. 그 사고에서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는 경험, 그 사고가 막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는 점(주점 사장이 술값을 못 받을까 봐 문을 잠갔다)을 알고 거대한 슬픔과 분노에 갇히고 만다. 그날의 벽에 갇혀 담배를 무는 것이 마음을 표현하는 유일한 통로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분명 안도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경애에게만은 예외다. 살아남았다 게 운이 나빴다고 느낄 정도로 불운이 지속된다. 오랜 기간 사귄 남자 친구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 엄마는 유방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직장은 그녀에게 단 하나 남은 동아줄이었다. 그런데 파업 중 일어난 성희롱 사건을 항의하는 바람에 파업이 흐지부지되며 동료들의 오해를 받는다. 노사 양측 모두에게 찍힌 경애는 총무팀에 발령받아 물품 지급 업무를 한다. 그러다 회사는 눈엣가시인 상수와 경애를 한 팀으로 엮어 베트남에 파견한다.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스토리는 이런 것이다. 그들에게 더 이상 고난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다. 고난이 와도 이전과는 달리 가볍게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 마치 가벼운 바람막이 옷을 입은 채 바람을 맞거나, 우연히 모자 달린 티를 입고 있었는데 우산을 쓰기도 민망할 정도의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고난의 부피가 작아져서가 아니라 그것을 버티는 마음이 더 견고해지는 과정을 이후 그들의 선택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매력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외로움’이란 본래 가진 뜻으로 인해 혼동하기 쉽다. ‘홀로 되어 쓸쓸하다’는 성질과 특성을 자신에게 그대로 이입시켜 자신‘만’ 외로울 거라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들, 각각은, 모두, 외롭다는 사실을 재치 있게 일깨우며 동질감을 형성해 외로움을 잊게 만든다. 경애 친구인 일영의 이야기다. 12월의 마지막 날, 새해의 첫날로 넘어가는 자정, 물류센터에서 야근을 하던 일영은 다음 해로 넘어가는 12시에 맞춰 카운트다운을 한다. 땡, 하는 순간 주문이 들어온 배송 상품은 100개들이 지퍼백. 일영은 그 물품의 바코드 찍어 옮기면서 한마디 한다. “야 너도 여간 외로운 인간이 아니구나, 새해가 되자마자 한 일이 지퍼백 주문이라니. 사람 다 외롭다, 100개들이 지퍼백처럼 다들 외로워.”(p.226)


실연에 대한 공감을 넘어 실감하는 수준에 이르게도 한다. 실연당한 여자가 느끼는 외로움은 가령 이렇다. “우리 헤어져, 하는 선언이나 다 관둬 하며 뒤도는 동작이”(p.60) 아니다. 전 남자 친구의 결혼식장에 가서 무슨 오기인지 축의금을 50만 원이나 낸 후, 식권 한 장을 받아 식당으로 가서 남들이 다 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그 절차를 기꺼이 밟으며 전 남친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새끼 뭔가요, 뭐, 사람 테스트해본 겁니까. 대체 어떤 욕을 해주어야 하나, 아주 고퀄 레전드급으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언니, 폐기 안 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p.176)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새끼 잘못이라며 공감해주고 내 마음엔 죄가 없으니 폐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위로한다. 다시 살아 볼 만한 용기를 얻는다. 이렇게 화끈하고 속 시원한 마음 치유 매뉴얼이라니.


마음은 형체가 없어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 이 책은 마음의 모양과 소리와 타인에게로 전달되는 과정을 적절히 표현했다. 경애와 상수의 마음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계속 엿보며 즐기고 싶은 관음증을 앓게 된다는 점, 이 책으로 얻은 부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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