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aopal Sep 15. 2020

파리

15살의 첫 글

 시끄럽게 날아다니던 파리를 손바닥으로 무심하게 쳤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연하게도 손바닥 중앙에 정통으로 맞아 파리가 책상으로 떨어졌다. 

 세게 치지 않아서인지 파리는 그 작은 몸을 바들바들 떨어대며 책상 위를 기어 다녔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가녀린 새벽, 못된 맘이 불쑥 들어 날카로운 끝을 가진 연필을 하나 집어 든다. 약했지만 그래도 저 작은 몸에는 손바닥의 압력이 꽤 컸었는지 방금 전의 기세는 없어지도 벌벌 떨고 있었다. 


 평소 고집이 셌는지, 아니면 원래 파리란 종족이 생명력이 강한 것인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가냘픈 다리를 열심히도 바둥거린다. 빤히 쳐다보고만 있다가 차라리 빨리 죽여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펜을 배 위로 살짝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기겁을 하며 도망하려 한다. 

 작은 몸뚱이의 생명력이 놀라워 뾰족한 연필심으로 그 몸을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살짝살짝 남 모르게 다리 하나, 날개 하나를 떼어가면서도 저 조그만 것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왠지 모를 희열이 먼저 느껴졌다. 세상이 조용한 이 새벽, 나 혼자 부산스럽고도 은밀하게 하는 나쁜 짓. 


 연필을 더 세게 잡고, 이제는 몸뚱이만 남은 채 여전히 빠르게 기어 다니고 있는 파리를 쫓아다녔다. 마음만 먹으면 재빠르게 배를 찔러 죽일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천천히 몸뚱이를 따라다니며 옥죄여 갔다. 오히려 다리가 있을 때보다 더 민첩해진 파리는 정말 생명에 대한 의지가 강해 보였다. 저 조그만 것이. 


 연필을 더 가까이 가져갈 때마다 심장이 뜨거워졌다. 혹시라도 벌 받을까. 약한 마음이 들었지만 흉측하게 기어 다니는 저 파리가 가여워서라도 꼭 죽여야 했다. 다만 한 번에 누르지 않았다. 


 사방이 고요한 탓에, 조금 건드려도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명확하게 귀를 찔렀다. 그 소리는 마치 나뭇잎의 건들거림과 같았다. 귀를 후벼 파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고 연필심을 머리와 배 사이 부근으로 조심스레 얹었다. 사근대는 저 소음보다 더 소름 끼치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단연 온몸으로 전달되는 단단한 파리의 몸에 대한 감촉이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힘을 더 가하게 되면 사그락 거리는 끔찍한 소음과 함께 잊지 못할 그 감촉이 온몸에 새겨 남게 될 것이다. 


 한참을 가만히 있다, 조그만 몸뚱이의 강렬함이 조금 사그라들 때쯤 조심스레 팔뚝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예상보다 더욱 소름 끼치는 느낌이 전율되어 발 끝까지 전해져 왔다. 들여다보니, 파리의 배는 뾰족한 연필심에게 관통되어 움직임이 멈춰져 있었다. 꼬챙이에 꿰여 건들대는 한 마리의 불쌍한 벌레. 

 

 그 가엽고도 징그러운 시체를 계속 남겨둘 수는 없었기에, 평소에 별로 들춰보지 않았던 책 모서리에 갖다 대고 살짝 연필을 굴렸다. 그러자 생명력을 잃은 그 파리는 힘아리 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찰나가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져 연필과 함께 꼼꼼히 휴지로 감아 휴지통에 버렸다. 

 괜히 목 뒤가 간지러워 박박 긁어댔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를 훌쩍 넘겼다. 눈이 저절로 감겨오는 것을 느끼며 침대에 바르게 누웠다. 방금 전의 일들이, 이상한 꿈을 꾼 것만 같아서 서둘러 눈을 감았다. 

 목 뒤가 다시 한번 가려워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개 들지 않는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