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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Dec 17. 2020

[서평]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사랑은... 만지작거리는 거야.

책장에서 누렇게 색이 바랜 오래된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1980년대 "유일한 유미적 쾌락주의자"라 불리었던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세월을 얼마나 먹었는지 책 가장자리가 누렇다.


사랑의 실체를 오로지 '몸'에서 찾았던 마 교수의 독특하지만 저렴하지 않고, 과감하지만 세련된 사고와 사상이 돋보인다.


책에서 마 교수는 여자의 '손톱'에 환장한다고 고백하면서 "사랑은 그저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부분'을 만지작거리면서 느낄 수 있는 관능적 희열감일 뿐"이라고 밝힌다.


지나간 시절의 여인들과의 만남을 회고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 여자와 나누었던 대화나 정신적 교류 같은 것은 깡그리 기억 속에서 없어져 버린다. 그리고는 그 여자의 육감적인 입술, 길고 투명했던 손가락, 유달리 짙었던 그녀의 향수 냄새..., 같은 것들만 가슴속에 남는다. (p.14)


젊었던 나의 눈은 여인의 가는 손목과 기다란 손가락, 얇은 발목에 반응했던 것 같다. 쌀쌀한 가을, 헐렁한 핑크색 니트와 다소 달라붙는 스키니 진을 입은 다소 밋밋한 몸매의, 이태원 어느 골목 커피숍 앞에서 서있던, 가늘고 하얀 손목이 돋보였던 어느 젊은 여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태원 프리덤'을 상징하는 여신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모르는 여자였기에 '만지작'거리는 영광을 누리진 못했지만.  


by Mike Type

마광수는 십수 년 전에 자살로 생을 마쳤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태원은 높은 임대료와 코로나 사태로 활기를 잃었다. 이태원의 여신을 다시 볼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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