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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크 타이프 Nov 17. 2023

고독의 압력

서평: 무라카키 하루키, 1997, <토니 다키타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1997년 단편집 <렉싱턴의 유령>에 실린 단편 '토니 다키타니'는 고독의 단면을 이야기한다.


토니 다키타니의 아버지는 재즈 트롬본 주자였다. 태평양 전쟁 발발 4년 전 여자가 얽힌 성가신 일이 생겨 일본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잃어서는 안 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미련이란 것도 없”이 홀연히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 나이트클럽에서 트롬본을 불며, 수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으며 전쟁과는 딴 판인 한가로운 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던 중 수상한 패거리들과의 교유 탓에 형무소 생활을 겪은 후 1946년 봄 일본으로 돌아온다. 직후 1947년 한 여자를 만나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그 이듬해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남자 아, 그러니까 주인공 토니 다키타니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어머니가 - “아무런 갈등도 없이, 고통이랄 만한 고통도 없이, 스르륵 사라지듯” - 죽어버렸다. 토니 다키타니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의 친구가 지어준 이름이다. 토니라는 서구적 이름 탓에 혼혈아라고 놀림을 받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토니는 외톨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별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혼자라는 것은 그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누구한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듣기보다 스스로 하는 편이 훨씬 마음 편했다.”


외톨이인 토니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이름 꽤나 날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서른다섯이 되었을 때 어엿한 자산가가 되어 있었고, 그 사이 몇 명의 여자를 사귀었다. 하지만 결혼을 생각하진 않았다. 함께 술을 마실 상대조차 제대로 없었지만, 그는 그런대로 차분하고 온화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토니는 사랑에 빠진다. 업무 관계로 만난 출판사의 아르바이트생으로 나이는 스물둘, 특별히 미인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는 “무언가 그의 마음을 세차게 흔드는 것”이 있었다. 다섯 번의 고요한 데이트를 하고 나서 그는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대답했다.


그동안 토니는 매일 혼자 술을 마셨다. “느닷없는 고독이란 중압이 그를 짓눌렀고 고뇌케 하였다.” 그의 고독에 감동했던 것일까. 여자는 결혼을 승낙했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토니의 인생에서 고독한 시기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그에게 고독하지 않다는 것은 “조금은 기묘한 상황”이었고, “고독에서 벗어남으로 해서, 다시 한번 고독해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공포는 현실이 되었다. 평소 옷 수집광으로 불필요한 옷을 수백 벌이나 구입했던 그녀 토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새로 산 옷을 환불하고 오던 중 차에 치여 죽은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그에게 고독을 다시 안겨주었다. 다시 찾아온 고독을 참지 못했던 토니는 죽은 아내와 신체 사이즈가 엇비슷한 여성을 비서로 고용하고, 그녀에게 죽은 아내의 옷을 입혀보며 위안을 삼으려 했고, 그것은 일견 기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가 죽고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를 둘러싼 “공기의 압력과도 같은 것을 조금씩 조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깨닫는다. 아내의 옷은 아내의 “숨결을 부여받아 아내와 함께 움직이던” 것이었기에 아내가 입지 않는 수 백벌의 옷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고독이 뜨뜻미지근한 어둠의 즙처럼 다시금 그를 에워쌌”고 그는 결국 아내의 옷을 대신 입어주기로 한 비서를 해고한다. 그리고 아내의 옷들을 모두 헐값에 팔아버렸다.


아내가 죽은 지 2년 후에 토니의 아버지도 간암으로 죽었다. 유품이라고는 방대한 옛 재즈 레코드 정도였지만, 토니는 그것마저 모두 헐값에 팔아버렸다. 아내의 옷들처럼 아버지의 레코드들도 그의 숨을 콱콱 막히게 했다. 죽은 자의 유품은 선명하지도 못한 기억을 되살려 그를 괴롭혔다. “확실한 중량을 지니고” 토니 곁에 존재하는 것이 그를 참을 수 없게 했다. 죽은 자의 유품을 모두 처분한 후 토니는 그야말로 정말 ‘외톨이’가 되었다.


비평가 신형철은 소설 토니 다키타니에서 ‘고독’의 실체를 추출해 낸다. 고독은 삶을 지배하는 ‘압력’과 같은 것. 고독이 공기와 같은 것이라면, 텅 빈 자신의 방과 같은 공간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고독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중량을 가지고 생활 속에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고독. “고독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 아니고, 고독하지 않다는 착각의 시간들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고독의 압력을 조정하려 애쓸 뿐, 온전히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독은 공기와 같은 것이니까. 외톨이는 모난 인간의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떠받치는 본질적 전제와 같은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고독의 압력을 견디는데, 혹은 압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음악’들이 책에서 슬쩍 소개된다. 보비 허킷, 잭 티가든, 베니 굿맨의 재즈.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고독의 볼륨을 높여보는 것도 외톨이들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by Miketype

* 참고 및 인용:

1. 무라카미 하루키 (김난주 옮김). 1997. <렉싱턴의 유령> 중 '토니 다키타니'

2. 신형철. 2018.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 '고독과 행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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