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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c Sep 06. 2020

나에게 맞는 집과 배우자는 실존하는가

내 위시리스트 판타지인가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 동생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쁘게 꾸미고 사는 걸 보니 결혼하고 싶어 졌어요."

남편은 "결혼  해도 집을 예쁘게 꾸미고   있어요"라고 조용히 대답했지만, 안다. 가족이 지방에 사는 것도 아닌데 독립을 실행할 만큼 충분한 자금과 구실을 갖기란 싱글 회사원으로써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 예쁜 집에 살기 위해 결혼하고 싶다는 친구들의 말은 타당하다. 물컵 하나에도 내 취향이 깃든 공간에서 살고 싶은 심정 이리라. 부모님이 학군과 경제 조건을 기준 삼아 장만한 그 오랜 아파트에서는, 내 방이라도 어떻게 꾸며볼까 해도 이내 벽지, 형광등, 몰딩의 기운에 눌려 프로젝트는 무기한 연기되니 말이다.

사실 나는 결혼 전 독립을 꿈꿔본 적이 없다. 현실적인 이유들로 집에 사는 것이 좋았다. 집은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에서 가까웠고, 가끔 집밥을 먹을 때는 많은 가짓수의 나물반찬들을 골라 먹을 수 있었으며,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회사생활할 때까지 같은 집에서 살다가, 결혼 후 미국에 와서는 1년 단위 렌트 계약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이사 갈 집을 찾는 일이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집이 다른 생활방식에도 영향을 주기에 나와 남편은 우리가 그 해에 추구하고 싶은 삶의 모습을 먼저 정하고 그것을 실현시키기에 알맞은 공간을 찾고 있다.


그간의 이사 경험을 통해 나는 어딘가에 ‘내가 살 집’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것은 배우자를 찾을 때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뚜렷할수록 그런 매물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아 물론, 집은 원하는 옵션 필터를 걸어 검색할 수 있지만 배우자는 그렇지 못해서, 그런 사람의 실존 여부는 만나고 나서야 (혹은 못 만나고서야) 알게 된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원하는 것이 뚜렷하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조건 20가지를 쪼르륵 읊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 호불호를 잘 알기 때문에 필수조건과 옵션을 간추려 낼 수 있다는 것에 가깝다. 집도 배우자도 잘 만나려면 이 필수와 선택 조건 선별이 중요하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 “내 취향은 확고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오픈마인드를 갖는 편이 좋다. 설령 모든 조건을 갖춘 매물(혹은 사람)이 나타날지라도, 그것이 내 것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선택지에 있는 것들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현재 사는 집을 예로 들어 보면, 이 집을 구할 때 나의 필수조건 중 하나는 (카펫이 아닌) 마룻바닥 집이었다. 마룻바닥이 예쁘기도 하거니와 카펫이 깔린 집에서 알레르기가 자주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No카펫’ 필수조건은 이 집을 처음 보러 온 그 날 깨지고 말았다.


밖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생각지도 않게 높은 천고와 너른 뒷마당, 그리고 거기에 심긴 키 큰 삼나무 한그루를 보며, 나는 이미 카펫 바닥에 내 몸을 적응시킬 궁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지금은 몸이 적응하여 별 문제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카펫 바닥은 선호하지 않지만 수용 가능한 조건일 것 이다.

배우자 이야기로 돌아가서- 집이야 계약기간이 끝나면 어디라도 이사를 가야 하니 기한 내에 타협안을 선택해서 이사 가야 한다고 하지만, 배우자의 경우는 '몇 살까지' 정해야 한다는 기한도 없다. (평생 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그래서 미혼이었던 나는 대체 언제 그 서치를 멈춰야 하는지 항상 궁금했었다. 조금 기다리면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고, 혹은 내가 방금 놓친 이만한 사람이 이제 다시 없을 수도 있는데, 과연 ‘누구에서’ 멈추는지,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나, 하는 질문 말이다.

서치를 멈춘 1인으로써, 그때가 되면 알아진다고 말하고 싶기는 한데, 혹시 사람에 따라서는 '다음으로 스킵해야 했어’ 혹은 '그 전 사람에서 멈춰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아직까지는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결혼 자체에 회의적인 경우는 있어도 말이다. 다행이다. 한 번의 잘못된 고, 스톱 때문에 망가진 판처럼 내 인생이 느껴진다면 아주 끔찍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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