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가장 먹고 싶은 것
미용실 네일샵 피부관리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시술이 끝날 때 즈음이면 얼굴도 잘 안 보이는 옆 손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피부관리실의 따뜻한 베드에 누워 푸르고 차가운 모델링 팩을 얼굴에 얹고 눈코 입이 다 막혀 있는 상태였다. 저쪽 어딘가 베드에서 차분한 저음의 중년 여성이 관리사 언니에게 자신의 대학생 아들 얼굴 솜털 관리법에 대해 물어보며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대학생 아들 얼굴 솜털까지 신경 쓰다니, 무척 한국 어머니스럽다고 생각했다. 이어 나는 그 학생이 6개월간 30킬로나 감량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비법이 궁금한 마음에 관리사 언니가 어떻게 살을 뺐는지 물어봐주기를 바랐는데 대화는 내가 원하던 대로 이어졌다.
그 학생은 내과에서 처방받은 식욕억제제를 복용하고 살을 뺀 거였다. 그렇게 아들 식욕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아주머니의 식욕과 다이어트 이야기로 이어졌다.
아주머니는 당뇨라 무염식을 하고 있어서 항상 차에 구운 김과 현미 햇반을 구비해 다녀 조난당해도 아마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일 년 만에 흰밥에 장아찌를 먹으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로 인해 급작스레 올라간 혈압 탓에 의사에게 타박을 듣긴 했지만.
“아 그런데 내가 미각 장애가 있거든.”
(네? 방금 장아찌 얘긴 뭐죠? 그 전 얘기인가요?)
“미각을 잃었어. 단맛 짠맛 쓴맛 신맛 아무것도 몰라. 잃은 지는 오래됐어. 정신적인 쇼크가 있었는데 그게 미각으로 오더라구.”
(그럴 수도 있구나. 하필이면 미각으로 오다니. 근데 장아찌 얘긴 뭐죠?)
“그래서 물 대신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
(네?? 맛도 모르는데 차라리 야채즙이라도 먹는 게 이득 아닌가요?)
관리사 언니가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대체로 물어봐줘서 나는 크게 답답함을 느끼지 않고 이불속에서 듣고 있었다. 미각을 잃어 살이 10킬로 정도 빠지셨다고 한다.
“왜 한식집 중에서도 간이 센 집이 있고 슴슴한 집이 있잖아. 내가 당뇨가 있으니까 밖에서 먹을 때 같이 먹는 사람들한테 꼭 물어보고 먹어. 이거 짜냐 안 짜냐. 잘 대답해줘야 돼. 나는 모르거든.”
아 미각장애와 당뇨가 같이 있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마치 턱이 많은 곳에 사는 장님 같아 아주머니가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다. 언젠가 아주머니의 미각이 돌아오도록 속으로 기도했다.
“가장 먹고 싶은 건 수박이야. 그래서 수박을 먹었는데 그냥 물 맛이더라고. 그래도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먹어.”
아주머니는 덤덤하게 이야기하셨다.
“재미없겠다 그쵸? 미각도 곧 돌아올 거예요.”
관리사 언니의 진심 어린 말에 나도 “맞아요 돌아올 거예요 정신적인 거니까”라고 마음으로 맞장구를 쳤다. 아주머니는 원장님의 호출을 받고 시술을 받으러 떠나셨다.
혹시 아주머니가 하루 날 잡고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과 그것을 먹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음미하고 울다 웃다 하다 보면 조금씩 감각이 깨어나지 않을까. ‘얼굴이 얼어붙을 것 같이 추운 어느 겨울날 아들에게 처음 오뎅을 먹여주려고 그 작은 손을 잡고 튀김 냄새를 맡으며 국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보며 주인아줌마 아저씨의 소소한 대화를 들으며 먹었던 뜨겁고 짭조름한 오뎅국물을 먹고 혀가 데인 날’ 같이, 그날의 오감과 지금의 솜털 대학생 아들에 대한 감정을 머릿속 가슴속 깊이 느껴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