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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pr 26. 2021

좋은 강의 만드는 법

learning and sharing

"교육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내게 필요한 걸 내게 맞는 방법으로 배우는 거죠."


지난여름, 에듀테크 스타트업 온보딩 때 한 말이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 확실해진 것도 같고.




나는 본업으로 교육 상품을 팔고 사이드잡으로 강의를 한다.


주로 seed 단계의 스타트업이나 지금보다 일을 잘하고 싶은 실무자들 대상으로 마케팅 강의를 한다. 강의를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온라인 강의, 오프라인 강의, 실시간 라이브 강의, 다양한 유형의 강의들엔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 듣는 이들 대부분이 현재 처한 상황에서 좀더 나아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무언가 대단한 걸 배우러 온다기보다는 지금 당장 눈앞에 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사람이 무슨 문제를 갖고 있는지, 나는 그걸 들어줄 수 있는지 파악하고 내 나름대로의 답을 건네면 서로에게 유의미한 시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온라인 강의에서는 1:1 코칭을 통해,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실습을 통해, 실시간 라이브 강의에서는 Q&A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주의를 기울이고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다 보면 곧 만족스러운 배움으로 이어졌고, 호평이 많을 시 얼마 안 있어 또 다른 강의가 두어 건씩 들어왔다. 내가 가진 이야기들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이번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늘 불안함과 두려움을 안고서 타인 앞에 서지만 또 그만큼의 보람을 얻곤 다.


ㅣ 이 사람은 찐이다


얼마 전 있었던 실시간 라이브 강연에선 감사하게도 이런 댓글을 받았다. 기억할 만큼 기분이 좋았다. 순간이나마 누군가에겐 정말로 도움이 됐다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정말 찐이라서 그랬을까. 대체 찐은 무엇이고 찐이 아닌건 무엇일까.


쯤해서 나는  '교육'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초중고 교육을 성실히 수행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듣기에 좋은 수업이나 잘 보이고 싶은 교사가 있을때에만 성적이 잘 나오곤 했다. 대학 교육이 좋았던 이유도 비슷했는데 배우고 싶은 전공, 교양을  '골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행히 나는 문학특기자로 입학했고 가르쳐주는 교수님또한 그시절 내가 그토록 되고 싶어했던 작가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이라는 시간과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일만큼 가치 있다고는 여겨지진 않았는데..일반화의 오류라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그래도 딱 한번, 등록금이 아깝지 않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할 수만 있다면 사년치 등록금을 그때 들었던 수업에 한번에 몰아 주고 싶을만큼 깨달음을 주는 강의였다. 졸업 이후에도 지칠 때마다 교수님이 낸 책을 읽고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작년 겨울,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한 후에 교수님께 선물 해드렸다. 무슨무슨 강의를 들었던 학생인데 감사하다고.

이처럼 때로 어떤 교육은, 아주 오래 한 사람의 마음에 남아 찐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대체  강의는 왜 찐이었을까?


강의를 들었던 시점으로부터 7년 후, 나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라는 책을 읽었다. 기억 속 찐이었던 강의와 말하고자 하는 내용, 다루는 소재가 동일했다. 비슷한 류의 감동을 받았지만 충격은 전보다 훨씬 적었다.


"여기서도 이 얘기를 하네. 나는 항상 이런데서 감동 받는구나" 겨우 이 정도 쯤의 감상이었달까. 아마 그 책을 대학 때 읽었더래도 별다른 깨우침이나 그때만큼의 감동은 없었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수천만원어치 값어치를 담고 있어"라고 감탄하며 힘들때 마다 꺼내보진 않았을 것 같았다.


'인간은 왜 열심히 살까. 나는 뭐가 돼야 할까.'

햇볕이 아주 환하게 들어오는 창가자리에서 무료하게 앉아있던 도중 이런 생각이 들었고 답도 없는 고민이라 더 무료해지던 참이었다. 오늘도 그저 그런 이론을 배우겠지. 심드렁하게 강단을 쳐다볼 때였다. 예상과 달리 잘 짜여진 강연이었다. 그날의 공기, 이야기하는 발화 방식,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소재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듣고나니 고민이 말끔히 해결됐다.

만약 그때 내가 이따위 생각할 시간에 행동하자! 그대로 강의장을 뛰쳐나가 상품을 팔거나, 도서관에 쳐박혀 카뮈의 책을 술술 읽을 만큼 다독하는 아이였다면... 아마 그 강의는 찐으로 남지 못한 채 스쳐지나가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교육은 그런 의미에서 참 개인적이면서도 인간적이다.

 



사회인이 되고 보니 성공하는 방법이 다 다르고, 공장에서 찍어나오듯 모두에게 통용되는 정석 같은 답도 없는 것 같다. 당연히 그러하겠지만 모두에게 맞는 교육도 없다. 그때 그때 내가 필요한 것들을 내게 맞는 방법으로 배우면 의미 있어지는 것일 뿐. 그렇다면 강의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교육이 가진 의미가 무엇일까?



| 마케팅 강의해서 뭐해요? 서비스 하나 제대로 만들면 그게 더 커리어적으로 좋을 텐데.


최근에 들었던 소리를 빌려와 답해보자면...글쎄. 이건 아마 내가 찐이 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거창하진 않지만 때로 어떤 강의는 한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을 테니까. 기억에 오래남았던 그날의 강의실 풍경처럼 앞으로의 내 일상에도 이런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고 내가 그렇듯 다른 누군가도 나로 인해 배울 수 있는 지점이 많았으면 좋겠으니까. 그래서 계속 뭔가를 배우고 나누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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