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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기리니 Jul 13. 2022

-연년생 독박 육아 정신없는 2일 차

언니의 마음도 힘들어

친정에서의 도움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8개월간 머물렀던 흔적은 어마어마했다. 카렌스 차 트렁크 아이들 카시트 발 밑, 내 자리 발 밑에 한가득 짐들을 쌓고 그것도 모자라 보이는 구석구석마다 짐들을 잘 구겨 넣었다. 4시간 넘는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데... 혹여나 바퀴가 펑크 나버리는 건 아닐지 노파심이 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싣지 못한 짐은 7박스나 더 있었다. 못다 실은 짐들은 택배로 부치기로 했다.


올라와서도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짐 정리를 몇 날 며칠 해댔다. 정리할수록 일거리는 더 늘어났다. 버려야 할 것들, 사야 할 것들, 교체해야 할 것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틈틈 해야 하는 게 일의 속도를 더디게 했다.


아이들은 3주 동안 적응기간을 두고 어린이집에 다녔다.

저질체력에 몸이 힘들어지면 쉽게 폭발하는 나를 위해 그리고 환경이 바뀌어 낯설어할 아이들을 위해 편은 3주 간의 휴직을 내었다. 첫째는 전에 살던 기억이 남아있어서인지 환경에 대한 적응은 첫날부터 잘했다. 무엇보다 아빠와 떨어져 있던 시간들을 너무 버거워했기에 아이는 정말 좋아했다. 둘째 또한 우려와는 달리 아빠, 엄마, 언니와 함께 24시간 있다는 게 좋았는지...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있는 오전 시간에 남편과 나는 밀렸던 집안일을 해치워나갔다. 짐 풀고 정리, 설거지, 빨래, 청소, 장보기, 요리 등등... 아이들이 두어 시간 보내고 돌아오는 그 시간은 어찌나 빨리 지나가던지... 남편과 의기투합하며 한창 의좋은 부부로 우리의 관계를 쌓아가고 있는데... 어느덧 남편 복직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막막함과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나 진짜 복직해도 되는 거지?"

"응 복직해. 먹고살아야지. 어떻게든 해봐야지."


복직을 앞두고 아이들이 차례대로 감기에 걸려 여차하면 온종일 가정보육을 혼자 할 수도 있는 나에게 남편은 우려를 표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에 예정대로 남편은 복직을 했다.




드디어 진짜 연년생 육아의 맛 보게 된 것이다. 남편의 출근시간은 7시  퇴근시간은 8-9시 때론 10시. 출근은 이르고 퇴근 늦다. 어린이집 등원 전 2시간, 하원 후 4시간에서 5시간까지도 난 아이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돌아온 집안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무엇부터 처리해야 되나 머릿속 회로를 빠르게 돌리며 개수대에 쌓아 올려진 그릇을 설거지하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널브러진 아이들 장난감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개키고 장을 보러 가고 음식을 하자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할 일을 조금 하다 보면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 어느덧 코앞이었다.

 

이들을 하원 시키고 간식을 챙겨주고, 함께 두 시간 정도 온전히 놀아주고, 밥을 차리고 먹이고 씻기는 일은 이렇게 한 두 문장으로 정리될 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등원하는 아이들

 30개월, 11개월 어린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노는 법을 몰랐다. 양보하거나 배려하는 건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단어다. 누구 한 명 잠시 봐주고 있노라면 다른 한 명은 울분을 터뜨리고 도통 기다리는 법을 몰랐다.

동시에 방치하거나 동시에 돌봐주거나였다.

잠시라도 눈을 돌리거나 너희끼리 잠깐만 놀고 있어 하고 다른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싸움이 일어났다.


둘째는 첫째를 따라다니거나 첫째의 장난감을 서슴없이 이것저것 만졌다. 첫째는 그런 둘째를 귀찮아하거나 장난감 소유권을 주장하며 갑질을 해댔다. 말귀를 알아먹을 턱이 없는 둘째는 언니에게 들이대다가 첫째에게 얻어맞은 뒤에야 서럽게 울면서 나에게 북북 기어와 매달렸다. 그러면 첫째도 쪼르르 달려와 동생이 아닌 자신을 안아달라며 떼를 썼다. 한쪽 팔 엔 둘째가 다른 쪽 팔 엔 첫째가 매달리며 서로 자신만 안으라고 울고 불고 하는 웃픈 상황이 연출되기 십상이었다. 11kg, 12kg 두 아이들을 양팔에 안은채 난 앞으로 닥칠 현실의 무게를  처절히 깨닫고 있었다.


지쳐버린 나 조금 더 의사소통이 된다는 이유로 첫째에게 쉽게 화를 내었다. 둘째를 때리거나 관심을 뺏기지 않기 위해 청개구리 짓을 하는 첫째에게 무서운 표정으로 소리를 빼액 쳐댔다. 오은영 박사님의 팬이자 신봉자지만 배운 대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읽어줄 여유가 내 안에는 없었다. 이 행동은 하지 말아야 된다며 윽박지르고 화내 것으로 대신했다. 그저 이 정신 사납고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빠르고 간편하게 마무리 짓고 싶을 뿐이었다. 첫째는 엄마의 무서운 얼굴과 말투에 입을 삐죽거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난 또 자괴감에 빠졌다. 난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걸까. 더 좋은 말, 이해의 말로 아이에게 알려줄 수도 있을 텐데. 이 수준이 나는구나 하며 말이다.


저녁 시간이 되자 첫째는 대뜸 나에게 엄마는 동생이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동생이 없다고 하자 '좋겠다'를 연발하며 "난 언니인 게 싫어."라고 이야기하더니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만 듣고 있자니 너무 익숙한 멜로디였다. 로 아이가 한창 심취해있는 콩순이 노래였다. 이는 가사말은 중간중간 빼먹었지만 간혹 들리는 가사와 멜로디로 추측했을 때 콩순이가 동생 콩콩이에게 가지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었다.


콩콩이는 욕심쟁이 다 가지려고 해

콩콩이는 떼쟁이 마음대로 해

엄마 아빠는 콩콩이 편을 들어

콩순이는 언니니까 양보해야지

콩순이는 언니니까 참아야지

왜 맨날 언니만 참아야 하는 걸까

왜 맨날 언니만 양보해야 하는 걸까

콩아 너도 한 번만 참아줄래

언닌 정말 힘들어 콩콩아


첫째는 마지막 가사말 언닌 정말 힘들어를 힘주어 불렀다.


우리 모두 힘든 건데. 연년생으로 태어난 게 애들 잘못도 아닌데 내 화에 못 이겨 아이들에게 감정을 폭발한 나 자신이 안타까우면서도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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