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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기리니 Aug 18. 2022

- 어린이집 선생님 앞에서 왈칵 울었다.

엄마의 정체성

그저께 저녁, 둘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는 칭얼대다 해열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아이의 체온을 재보니 38.8도였다. 급한 마음에 해열제를 먹이고 혹시나 싶어 코로나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했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아침 8시 즈음, 체온은 36-37도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평소처럼 급성중이염이겠거니 싶었다. 이전의 경험상으로 급성중이염이었을 때, 간밤에 열이 올랐다 다음날부터 열이 내리는 일이 잦았다.


그간의 상황과 자가 키트 검사 결과를 키즈노트에 적고 아이를 등원시켰다. 혹여 열이 다시 오르게 되거나 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아이를 데리러 갈 것이고 별 탈이 없을 시, 둘째만 1시간 먼저 하원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겠다 말을 덧붙였다.


사실 가정보육을 해야 하는 건가 잠깐 고민했었다. 하지만 난 얼마 전 국비지원 교육을 시작했다. 의 일 경력은 길지 않았다. 애매한 경력을 가진 나는 신입이라 하기에도 혹은 경력직으로도 애매했다. 경력단절 4년 차, 아이들이 어리기에 당장 취업을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무엇이라도 배우고 준비를 해두자 라는 생각이었다.





국비 지원을 받고 교육 수료 하기 위해서는 출석률이 굉장히 중요다. 지만 수업 첫날, 첫째의 질병으로 이미  차례 결석을 한 상태였었다. 이번에도 또 결석하게 된다면... 교육일정이 3분의 1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수료가 멀어지는 건 자명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 스스로 합리화했다.


'열도 내렸잖아. 저번처럼 중이염이겠지. 하원하고 병원 데리고 갈 거니깐. 그리고 수료하려면 더 이상 결석은 안 돼.'


등등의 이유로...






교육이 끝날 때까지 어린이집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다행히 아이가 열이 오르지 않고 잘 놀고 있나 보다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개수대에 쌓여있는 그릇들을 설거지 하려던 참이었다.


'지지지~'


"어머니~ 이나가 낮잠 자고 일어나니 열이 38.6도예요. 지금 오셔야 될 것 같아요."


원장의 전화였다. 난 두 손에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뒤집어 벗놓고는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원장님이 아이를 데리고 나와있었다.


"어머니 보통은 해열제를 먹이지 않고 12시간 이상 열이 나지 않을 때... 열이 내렸다고 보거든요. 앞으로는 경과를 지켜보시고 보내주셔야 해요. 요즘 코로나, 수족구 난리라 양해 부탁드려요."

"아... 네 원장님 알겠습니다."


순간 당황도 하고 멋쩍고 민망하기도 해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18명의 대기 환자들로 병원은 북새통이었다.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40분을 기다려 코로나 검사를 먼저 받고 진료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의사는 아이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수족구 초기 증상처럼 보인다고 했다. 손발이나 몸에는 수포보이지 않지만 목구멍에 한 개의 수포가 보인다며 수포가 더 발현될지, 여기서 멈출지는 일단 약을 먹고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다. 처방전을 들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왔다.





아픈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아이가 아픈데도 원에 맡기고 교육받으러 가는 난 이기적인 엄마이고 결국은 감염병을 앓은 아이를 맡긴 민폐 엄마라는 생각... 그리고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공부도, 일도 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주는 좌절감이었다.


공부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아프지 않아야 하거나

친정이나 시댁 가까이에 살거나

그것도 아니면 오늘처럼 어린이집에 민폐 엄마가 되어야 한다.


결국은 또 확인 도장을 찍는 꼴이 되었다.


네 시간은 가질 수 없어. 네 시간은 아이와 함께 흘러.






병원 진료를 마치고 첫째를 데리러 다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수족구 초기 증상으로 보인다는 의사의 진단을 어린이집에 전해야 하는데...


"어머니, 병원 다녀오셨죠? 뭐래요?"

"죄송해요.. 수족구 초기 증상 같다고 해요."

"아이고 어머니~ 제가 그랬잖아요. 열이 나면 이미 뭔가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휴.. 첫째도 걱정이네요. 옮을 수도 있을 텐데..."

"하라, 이나 둘 다 며칠 동안 가정 보육할게요. 원장님 정말 죄송해요."


원장님과 대화를 하 내내 정말 마음이 많이 눌려있는데...

둘째 아 담당 선생님이 나왔다. 아이가 좀 어떤지 물어보는데... 몇 마디를 못 나누고 선생님 앞에서 그만 눈물을 왈칵 쏟아버리고 말았다. 평소에 편히 생각하던 선생님이서 그랬을까. 복합적으로 들었던 감정들이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주체할 수 없이 눈물로 터져 나왔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원장님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전화를 해왔다.


내 눈물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난 그저  아이를 못 돌보았다는 죄책감, 민폐 엄마가 된 이 상황, 뭐라도 해 보자며 열의를 다지는 이 시점에 내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느낀 현실 자각 타임이 온 것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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