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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기리니 Oct 16. 2023

-집순이의 하루 일과

! 아까운 나의 시간      


9시 30분부터 4시.      


하루 중 아이들이 없는 유일한 나의 시간이다.


직장도 안 다니고, 에너지가 적은 내향형인 탓에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모든 일과는 주로 집에서 혼자 보낸다.     


“집에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안 답답해요?”     


그런 나를 보며 동네 지인은 답답해했다.

나를 이해 못 하는 건 비단 그뿐만 아니었다.

E성향(외향적인)의 주변인들은 도대체! 집에서! 무엇! 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365일 집에서 뭐 하는데?’     


E성향(외향적인)의 그들은 주로 혼자 있는 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고, 심심하지는 않은지, 답답하지는 않은지 궁금해했다.     


그들의 궁금증에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난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것이 에너지가 적은 나의 충전하는 법,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떨고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 그것도 나에게 필요하고 좋을 때가 있다. 그래서 때때로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은 별개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나에게 에너지 소모이다.

듣는 것 또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난 남 눈치를 잘 보는 편이다. 정말 편한 지인들과는 덜하지만. 말을 할 때 혹여나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한 것은 아닌지 살필 때가 많다.


이런 모든 과정들이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집에 있기 좋아하는 내향인이라 해서

하루 종일 누워있거나 게으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나름 알차게 보낸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나에게 동력이 될 때가 많다.




너희가 청소의 맛을 알아?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일과는 청소로 시작된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개방한다. 지난밤 묵어있던 냄새를 빼기 위해서다. 널브러진 책과 이불, 장난감, 옷감들을 정리하고 또 정리한다. 어느덧 한 바구니 가득 나온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은 뒤, 저녁과 아침에 먹은 흔적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설거지가 끝나면 바닥에 밟히는 머리카락이며 종이, 클레이, 빵 부스러기들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다.      


때로는 하루씩 날을 잡아한 구역을 싹 정리할 때가 있다.


오늘은 작은방, 내일은 냉장고 청소! 이런 식으로 말이다.       

환기와 청소로 한결 나아진 집을 둘러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청소 없이 시작된 하루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단추 구멍을 밀려 끼운 채 입은 불편한 스웨터 마냥 불편한 하루가 시작된다.      


청소는 나에게 있어 마치 그런 거다.


시험 공부하기 전, 책상 정리, 필통 정리가 마무리되어야 공부를 시작하듯 청소로 시작 된 하루가 꼬이지 않을 것 같은 틴 같은 것.


          



무언가를 적어야 돼, 생각의 정리     


혼자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은 후


오늘 할 일들은 무엇인지, 이번 주에는 무얼 해야 하는지, 이번 달에는 큰 행사 및 챙겨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출산 후 머리가 돌이 되어버린 탓에... 적지 않으면 자꾸만 잊어버린다.


하루 종일 깜빡깜빡하다가 아이들 올 시간이 임박해서야 ‘아 맞다! 바보네!’를 연발한다.     



플랜다이어리에 때때로 드는 생각들, 하고 싶고 새롭게 배우고 싶은 일들을 적는다.


아이디어에 더 확장이 필요할 땐 책을 보거나 미디어를 참고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글감들이 떠오르면 메모처럼 적어두었다가 생각날 때 틈틈이 글을 쓰기도 한다.

      

난 무언가를 말로 즉석으로 풀어내는 것보다 먼저 생각들이 떠오르면 글로 정리한 뒤 나중에야 말로 풀어내는 편이 편하다. 말보다 글이 편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을 때, 무언가를 쓴다.

물론 혼자라서 말을 할 대상이 없기도 하다.          




혼자 하는 산책이 좋다     


남편이 쉬는 날에는 아이들과 함께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 편이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역시 정말 좋다. 까르르 웃음이 넘치고 아이들의 에너지에 나도 덩달아 힘을 얻는다.


하지만 혼자 걷는 그 시간이 위로가 될 때가 다.


생각이 너무 많고 잘 정리되지 않을 때 혹은 결론이 나지 않을 때 나는 무작정 걷는다.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걷다 보면 가슴이 뻥 뚫리고 머리는 맑아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이 경험은 나를 위로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달마다 계절마다 변해있는 바람과 온도, 습도, 풍경을 눈과 코로 또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덤.     


누군가는 집에만 있는 나를 보며 답답해하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엄청난 집순이는 당분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집이라는 늪에,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매력적인 덫에 빠져버렸다.


아이들 하원시간이 곧 다가온다.

오늘, 마저 남은 나만의 시간 잘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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