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기 전, 딱히 집의 의미 같은 것에 깊게 생각해 본 적은없다. 20대 중후반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취업 이후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했다.
다시 돌아가는 곳
집은 그런 곳이었다.
학교가 끝나든 친구를 만나든지 일을 마치든지 결국엔 돌아가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 그리고 임신과 출산... 일을 정말 중단하게 되었다.에너지가 적은 내향인인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자연스레 머무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내 집이 될 그 집을 꿈꾸었다.
가족들과 단란하게 지내며 겉으로 보기만 해도 행복해 보이는 집. 남들 보기에도 그럴싸한 집. 한동안은 시간이 날 때마다 SNS 속 남의 집들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상상했다. 언젠가는 집을 사서 저렇게 살고 싶다.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일지라도.남들의 집에 마음을 빼앗기니 자연스레 주어진 삶에 불평이 생겼다.
언제 이사 갈 수 있을까?
임대에서 얼른 탈출해야 되지 않을까?
아이들 초등학교 가기 전에는 옮겨야 되지 않을까?
여보는 집에 대한 욕심이 없어?
라는 말로 남편을 은근슬쩍 쪼아댔다.
사실 내 안의 불안이 꿈틀대고 있었다.
17번도 더!! 자그마치 17번!
어렸을 적부터 지금 사는 친정집에 이르기까지 우린 열일곱 번의 이사를 다녔다.(서류상으로 떼어본 것이 아니라 엄마의 구두에 의한 것임으로 가감이 있을 수 있다.)
엄마의 지난한 날의 상징 17.
엄마는 고생했던 옛날 일을 꺼내면... 어김없이 '그간 이사를 몇 번했는지 아느냐'며 열변을 토했다. 어디 가서 창피해서 말을 못 하는 건 물론이고, 서류(주민등록초본)를 뗄 때도 장수가 너무 많아 창피하다했다.
우리 집의 이사 횟수는 엄마의 고생이었다. 아빠의무능력이었다. 어디도 함부로 못 꺼내놓을 나의 어릴 적 상처였다.
우여곡절 열일곱 번의 이사를 끝으로 우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열일곱 번의 집 중 내가 기억나는 집은 다섯 집인데안타깝게도 그중 좋았던 집은 하나같이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는 다섯 번의 이사를 했다. 당시 살았던 지역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 아파트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택가에 살던 친구들이 하나 둘 새 아파트로 이사 갈 때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형편에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줄곧 주택가가 즐비한 동네에 주택에 살았다.
주인집 옆에 간이로 내달아 만든 집, 현관문이 딱히 없이 문을 열면 바로 방이 나오는 2층집, 간이로 바깥에 씻을 공간을 만든 집.
그런 집에서 부모님의 갈등은 늘 있어왔다. 경제적인 이슈가 문제였다.
우리 집이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난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 때까진 우리 집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놀기도 했다. 당시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많이 없었다. 그 동네 사는 친구들의 형편 또한 고만고만했다. 그래서 모두가 이렇게 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친한 친구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난 친구의 집에 들어서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우리 집의 두 배에서 세 배는 더 넓어 보이는 집이었다. 그 친구의 집의 크기에 한 번 놀라고 그에 비해 초라한 우리 집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간이로 내달아 만든 공간이 아닌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구조였다. 놓여있던 가구들도 집과 어울렸다.
그 친구 부모님의 미소는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 집이 부끄러워진 순간이.
내가 꿈꾸는 집은....
집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기 싫었다는 게 더 맞겠다. 어릴 적 나에게 집은 단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사하는 횟수는 늘어갔지만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님이 싸우는 일이 잦았고 그런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적도 많았다. 집에 들어가는 길 ‘오늘은 안 싸웠으려나.’라는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섰던 적이 많았다.
사실 난 두려웠다.
이런 형편이... 혹시아이도 같은 상처를 입진 않을까.
세상은 동네로, 사는 집으로 계급을 나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사는 곳에 따라 휴먼 XX, 임대 X, 월 XX, 빌 XX라는 은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는 오래전 기사를 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