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 노력과 순응의 기도
4월의 캘리포니아 바닷물은 아직 차가웠다. 나는 처음 산 웻수트와 보드를 가지고 알 수 없는 절박한 심정으로 바다로 갔다. 어디에 차를 주차하고, 어느 지점에서 파도를 타야 하는지, 그날의 파도는 탈 만한지, 아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인터넷과 동호회 채팅방에서 곁눈질한 정보 몇 조각만을 가지고 무작정 혼자 갔다. 채팅방의 사람들은 혼자서 서핑을 시작하기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며 칭찬했다. 어딘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맞았다. 내가 서핑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혼자서라도 바다에 가야 할 만한 강한 이끌림이 있었다. 거의 울 것 같은 마음이었다.
웻수트 입는 법을 잘 몰라 한참을 낑낑대며 씨름하고 물에 들어갔는데, 수트를 입으니 신기하게도 물이 조금도 차갑지 않았다. 마치 물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에서 받은 그룹 강습에서 배웠던 기초를 애써 떠올리며 팔을 휘저었다. 자세도 엉망이고 중심 잡기조차 쉽지 않아 보드에서 떨어지기 일쑤였지만, 한참을 시도하자 초심자에게 유명한 도헤니 해변Doheny State Beach의 파도는 너그럽게 나를 밀어주었다. 하얀 파도가 나를 해안까지 미는 힘이 느껴졌을 때, 내가 만난 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내가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았다.
대규모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의 긴장에서 차츰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에 가서 우울증에 걸린 엄마에게 열심히 사랑을 주고, 엄마가 나를 의지하며 좋아지는 걸 보고 돌아온 지 두세 달쯤 되었을 때였다. 마음은 나름 편해졌지만 여전히 어딘가 공허했다. 남가주, 그중에서도 오렌지 카운티에서의 삶은 대도시의 삶과 매우 달랐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과 함께였고, 보이는 풍경도 미국 영화에서 많이 보던, 가정집이 나란히 줄을 서 있는 모습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서 이사한 지 2년이 되어갔지만 도심에서만 살아온 나는 여전히 이곳에 마음을 두기가 쉽지 않았다.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여전히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원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모든 에너지를 일과 끝이 보이지 않는 국가자격증 시험에 쏟고 있었다. 나는 미국에서의 삶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작한 서핑은 한순간에 내 삶을 바꾸었다. 잠을 잘 자지 못해도, 몸이 천근만근같이 무거워도 일단 바다에 나가 파도를 맞고 오면 기분이 상쾌했다. 무엇보다 바다에 나갈 때마다 배우는 것이 있었다. 자세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패들링을 할 때는 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파도가 좋은 파도인지, 더디지만 항상 조금씩 진전이 있었다. 하루 걸러 하루는 무언가에 홀린 듯 바다로 갔다. 서핑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밤 10시에 잠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서핑 덕에 한국에 돌아가려는 계획을 조금 유보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엄마와의 통화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이제껏 들어본 것 중 가장 절망적인, 삶을 놓아버린 듯한 목소리였다. 엄마는 60대 여성이 드물지 않게 겪는 망막 폐쇄 때문에 한쪽 눈의 시력이 좋지 않아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라고 했다. 눈도 눈이었지만,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밥도 차려 먹을 수 없고, 집 밖에도 나갈 수 없다고, 혼자 있으면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회사일과 시험에 정신이 팔려 휴일에도 도서관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익히 본 모습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목에 걸려 잘 나오지 않던 질문을 했다. "한국 들어갈까?" 엄마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초에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바로 다시 들어오겠다고 말해 둔 차였다. 회사가 바쁜 시기라 휴가를 낼 수 없었다. 매니저에게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말하고 바로 한국행 티켓을 예매했다. 한국행을 기다리는 2주 동안, 우습게도 내 맘에 계속 걸리는 것은 서핑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서핑인데,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서글퍼졌다. 그래서 출국 직전까지 바다엘 나갔다.
한국에서 하는 세 번째 자가격리였다. 세 번째인 만큼 요령이 제법 생긴 터였다. 격리 중에는 휴가를 쓰지 않고 원격으로 일 하는 것이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선 두 번의 격리 동안은 미뤄둔 책을 읽고, 유튜버 땅끄부부의 홈트레이닝 영상을 보면서 몸을 움직이고, 넷플릭스로 연속극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도 책과 볼거리들을 준비해 갔다. 거기에 틈틈이 서핑 연습을 할 생각으로 미국에서 밸런스 보드를 사 갔다.
하지만 이번 자가격리는 이전 두 번과는 적잖이 달랐다.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엄마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엄마는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고, 낮에는 심한 불안이 갑자기 엄마를 덮쳐오곤 했다. 옆방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는 엄마를 두고 일을 하는 건 영혼을 갉아먹는 듯한 일이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하는 일은 엉망이 되었다. 어떻게 해도 엄마의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기도 하곤 했다. 밥때가 되면 배는 고픈데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짜증을 부렸고, 아버지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갓난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나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으레 좋아지곤 하던 엄마였는데, 이번엔 한 달이 다 지나가도록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상담사인 친구는 내가 심히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마음의 치유는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가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내 정신은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지만, 엄마를 혼자 둘 수는 없어서 아버지가 일을 그만두고 엄마를 돌보지 않으면 내가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오겠다고 했다. 일주일을 고심하던 아버지는 결국 일을 그만두기로 결단했고, 나는 안도감과 무거운 죄책감을 함께 안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필요하다면 한국에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친구와 목사님이 맞았다. 나는 살아야만 했다.
무거운 운명처럼 나를 누르고 있던 죄책감과 불안 속에서, 다시 서핑을 시작했다. 답답하고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있는 힘껏 패들링 하는 데 쏟고 나면, 그래서 온몸의 힘이 다 빠지고 기진맥진할 때면, 신비하게도 긍정적인 마음이 차올랐다. 어떨 때는 바다 위에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엄마의 우울증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고, 눈은 점점 나빠졌지만, 파도를 잡으려 애쓸 때는 그런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파도의 크기, 속도, 모양, 방향에 따라 본능적으로 온몸의 근육이 움직여야 하는 그 순간엔, 세상에는 나와 바다뿐이었다.
서핑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파도를 절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애를 쓴다고 해서 파도가 오지도 않고, 파도를 막아선다고 해서 파도의 방향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다가, 좋은 파도가 왔을 때, 그리고 때마침 내가 그 앞에 있을 때, 있는 힘껏 팔을 저어 잡아 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마치 사람의 마음처럼, 바다는 내가 애써서 될 것이 있고, 애써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파도에 순응하고, 거기에 내가 필요한 노력을 했을 때, 그래서 파도를 잡아 올라타 그 힘으로 함께 가는 순간에는, 모든 것이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바로 이 기분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았으리라. 미국에 다시 돌아오고 두세 달이 지났을 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서핑을 하며 어두운 나날을 이겨내고 있을 때, 웬일로 엄마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에서 지난 번 통화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갑자기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잠도 잘 자고, 혼자 있어도 더 이상 불안하지도 않다고 했다. 집 밖에도 다시 나갈 수 있게 되었고, 불안 때문에 포기했던 백내장 수술도 용기를 내서 받기로 했다고 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엄마는 병원에서 바꿔준 약 덕분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왠지 진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세상에 기적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까. 그리고 그 기적은, 인간의 노력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다음 날 바다에 가서 벅찬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라인홀트 니버, 평안의 기도
(정지우작가님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