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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헨님 Oct 30. 2019

연말이 다가오면, 나이를 헤아려 보아요

내년에는 조금 더 어른이기를!

3분기 실적이 마감된 지는 이미 한참 전이고, 내일모레는 11월이며 날씨가 쌀쌀해 온수매트를 주문했어. 그런 얘기를 나누다가 순식간에 나이 얘기를 한다. 동갑인 여자친구들과 내년에 맞이할 숫자를 헤아리고, 우리가 벌써 나이가 이렇게! 한다. 이러다가 금방 마흔도 되겠지, 하고 동시에 비명이 터진다. 아, 맞아. 금방일 거야.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된 것처럼.


어른이 뭐 달리 완성되니,
그냥 애 나이 든 게 어른이다.


하고 내 할머니는 딱 하나 옳은 말을 했다. 내가 세상에 나와서 눈에 초점을 맞추고 나서 관찰한 모습 내내 우아하지 못하셨고, 옛날 그 소설 속에 영화 속에 나올 법한 시어머니로 평생 계셨던 분이 그렇게 말했다고. 엄마에게 들었다. 그걸 당신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시절에 대한 일종의 사과처럼 여기고, 청하지도 않은 이해를 혼자 해보기도 한다고 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라 그랬을 거야, 생각해 보니 그때 시어머니 노릇을 그렇게 할 때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거였잖니.

세상에 그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그런 원망을 하다가도, 그냥 나이를 차곡히 먹기만 한, 평생 철 안 든 아이 같은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해 보는 거였다. 진짜, 그 말도 맞다. 왜냐면, 나는 열 살이건 스물다섯이건 그냥 그 안에 내가 담겨 있으니까. 누구보다 생생하게 그 서툴고 어이없는 내용물을 몇십 년째 통째로 들여다보고 살았다.


내가 대학생 때, 30대 직장인 언니를 보면 저 언니 여태 결혼도 못 하고, 뭐 별거 없는 것 같고 참 큰일 났다, 싶었다니까.

그런 얘기를 하면서 뒤늦게 미안하고 경솔했다는 반성을 꼭 한다. 지금 어린 아기 사원들이 우리를 보면서 같은 탄식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 곧바로 오싹해진다. 그런데도 여전히 똑 부러지는 사무적인 말투보다 다정하고 장난스럽게 대화하는, 이모티콘도 엄청 많이 쓰는, 사무실의 허리급 직원으로 지낸다. 어머, 그러셨어요? 어머, 어쩌죠~ 그런 걸 메신저로 쓰고, 웃는 얼굴(^^)도 꼭 붙이고. 정말, 메일로 오가는 온기 없는 텍스트를 여전히 잘 못 견디는 7년 차 회사원이라니. 사실, 차가운 커리어우먼으로 보이고 싶어서 머리도 짧게 잘랐는데, 다 소용없는 일인 것 같다.



신입사원 때는 멋진 선배들이 너무 많아서, 선배님~ 사랑해요~를 남발하고 실없는 애교도 많이 부리며 살았는데 그 결이 어디 가지 않고 쓸데없이 싱글싱글한 애티튜드를 남발하고 있어서. 그런 모습을 떠올리니 이렇게 나이가 들고 연차가 거의 10년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랑은 하나도 상관이 없었네, 허무해진다. 어찌 됐든, 이제 두 달 후엔 한살이 더 늘고, 연차도 한 해 더 높여서 이야기해야 하고, 같은 짓을 저질러도 더 한심하게 보일 수 있다고 퍼뜩 깨닫고 말았다.  

저는 그냥 나이가 조금 더 먹은 저예요,라고 너그러움을 구할 순간을 너무 많이 만들지는 말아야지, 하고 동갑 여자 셋이 모여 모닝커피를 마시다가 다짐했다.


출근하는 아침이 슬슬 쌀쌀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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