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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Man Feb 07. 2019

홍상수 그리고 김민희

전체주의적 도덕성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는 스크린을 보았다.

[홍상수 그리고 김민희. 둘은 사회 윤리적 잣대로 비난받을 수 있는 관계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홍상수의 영화에 혼재되는 이들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야 할 문제를 내포하니 비윤리적인 작품들이다 에는 동의 할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을 기조 하는 사건을 배제하고 예술과 사람을 가로질러 이분법적으로 보기 힘듦을 인지하는 바이나 그렇기에 예술과 윤리의 도덕성 관계에 대해 우린 다시금 질문할 방향도 내포하고 시사함을 알린다. 이건 단순히 내 개인적 자유의지를 통한 관점이며 이 글엔 통념적 도덕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개인이 발견한 두 존재의 새로운 접근임을 알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도 연예 뉴스란에 홍상수 그리고 김민희 뉴스가 올라온다면 눈을 감고 헤드라인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들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정의되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설정되어 실체화되었다. 그리고 홍상수와 김민희를 극적인 인물로 만들고 그들의 관계를 사회적 통념으로 만든 벽돌에 둘러싸 높은 벽에 가둬 놓았다. 


사실 나는 홍상수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에서 이야기한 대로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는 말에 부합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 전제는 ‘불륜’이라는 상황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둘을 볼 때 그 단어가 뇌를 스치지만 결국 극장에선 이 둘의 맨얼굴만이 기억이 날 뿐이며 순간마다 탄복 할 뿐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읽기’ 시작한 첫 접점은 <북촌방향> 이었다. 이 영화에 깊은 인상을 받진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남았던 건 영화의 ‘전체적 이야기’였다. 평범한 소설이 인상 깊은 소설로 가기 전까지 발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장면의 순간 충격보다 마음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전체적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홍상수 영화엔 극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극적인 것처럼 보이는 관계들이 사실 사회적으로 그렇게 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 올 뿐이다.


이런 홍상수의 세계에 김민희는 충격적이지 않은 필름 속 단 하나의 충격이다. 김민희는 한국 영화계에 어쩌면 가장 눈에 띄는 비약의 발전을 한 배우일 것이다. 잡지 모델로 출발하여 베를린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되기까지의 극적인 변화.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꾸준히 상승세였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것 같던 그녀에게 <화차>는 관객과 평론가에게 ‘연기자’로 각인시켜준 계기가 되었으며 <연애의 온도>, <아가씨> 그리고 홍상수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정점을 찍었다. 김민희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녀의 욕심이 보인다. 그녀는 그런 배우다. 


난 그녀가 홍상수 감독을 애인 그 이상의 것으로 여긴다고 생각한다.(매우 주관적으로) 물론 홍상수 감독도 김민희를 애인이자 뮤즈로 자신의 예술적 역량의 뜀뛰기를 도와줄 파트너라고 감히 생각한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홍상수 감독의 19번째 영화 속 김민희에 대해 “주연을 맡은 김민희는 시종일관 관객을 깨어있게 한다”고 호평했다. 이런 호평은 그간 ‘평범한’ 홍상수의 영화 내러티브 속 눈에 띄는 ‘극적임’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읽을 수 있는 필름을 만들 수 있는 감독 단순하지 않을 것만 같던 것들을 단순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소설가 브루스 채트윈의 말한 한 구절이 어쩌면 홍상수, 김민희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향이라 생각된다. 

“여권을 잃어버리는 건 작은 걱정이었다. 공책을 잃어버리는 게 대재앙이었다” 

홍상수의 수많은 문장은 김민희고 역으로 김민희에게도 수많은 문장은 홍상수일 것이다. 서로는 서로를 간직할 만한 공책일 것이다. 


다시금 이들의 공책은 필름에 적혀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난 이들을 높은 벽안에서 보지 않을 것이며 극장에서 극적이지 않은 것을 ‘읽을’ 준비를 할 것이다. 물론 이들의 맨얼굴만을 마주보며 말이다.



사진: © Gerhard Kassner / Berlinale Berlinale 201erlinale 2017Berlinal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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