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껄로
왜, 한 사람이 꿈을 꾸면 몽상이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고 하지 않은가.
빌 브라이슨 <나를 부르는 숲>
껄로 트레킹 투어를 했다.
가이드는 열아홉 살 푸까.
미국인 제시카와 샤샤 그리고 인도인 케이제이와 함께했다.
셋은 회사 동료였다. 컴퓨터 관련이었고.
케이제이는 대구에서 6개월간 연수했다고 한다.
그들은 트레킹 내내 입을 쉬지 않았다. 수다쟁이였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신경 안 쓰는 듯해서 아쉬웠다.
그것도 잠시.
빠르게 오가는 대화에 끼려는 마음을 버리자 영어가 노랫소리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편하고 좋은 트레킹이 되었다.
제법 큰 집에 들어갔다. 바로 2층으로 올랐고.
벽에 작은 부처를 모신 불감이 눈에 띄었다.
불감 밑에는 꽃과 과일, 과자, 음료 같은 선물이 가득 놓여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대나무 우리에는 뿔이 커다란 검은 소들이.
소들 사이에서 송아지 한 마리가 진흙 위에서 졸고 있었다.
왼 발이 축축했다. 내려다보니 양말에 새빨간 피가 번지고 있었다.
전혀 아프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바로 거머리!
내 피를 보고 나머지 사람들도 급히 몸을 살폈다.
샤샤가 놀라 순식간에 옷을 벗었다.
가랑이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거기까지 오른 것인지.
발등의 거머리는 어떻게 도망친 것인지.
배가 잔뜩 부른 채 동그래져 떨어졌겠지?
점심시간에 맞춰 비스킷, 쌀 튀김, 견과류, 감자튀김 등이 차려졌다.
많이 먹었다. 차도 마셨다. 이미 배가 부른데 또 국수가 나왔다. 두부와 함께.
그렇군. 국수가 메인이었던 것. 짠 편이었지만 맛있었다. 푸짐했고.
한국 사람이 왔다며 집주인 아주머니가 좋아했다.
마당에 내려오니 마을의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할아버지에게 귀엣말을 했다.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외쳤다.
"주몽"
그리곤 해맑게 웃는데 이가 하나도 없었다.
우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 "주몽"이라고 외쳤다.
할아버지는 주름진 얼굴에 더 많은 주름을 만들며 좋아하셨다.
다시 트레킹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잠시 기다렸다. 비옷을 입었고. 조금 잠잠해지나 싶은 때에 출발했다.
비는 왔다가 그쳤다가 오락가락했다.
비옷은 무척 귀찮았다. 몸이 둔해졌고. 소리도 잘 안 들렸고. 바스락거렸다.
비닐 속으로 습기가 차올라 더웠다.
쌀쌀한 날인데도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점점. 토독토독 떨어지는 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둘러보니 밭과 논이 푸르러져 있었다. 꽃은 색이 더 선명해졌고.
나무들은 돌연 우두두 물방울을 떨어트렸다.
모닝 글로리, 아보카도 나무, 오렌지, 고추, 피망, 호박들이 보였다.
어디선가 라임 향기가 났고.
또 겁먹은 소들과 귀여운 송아지는 똑같은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꿈을 꾸고 있는 돼지가 있었고. 골짜기까지 쫓아오던 건강한 강아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 비를 맞으며 걷는 길이 정말 좋았다.
여섯 세대가 함께 사는 집에 들렀다.
집은 쓰러질 듯 삐뚜름했다. 허름했고.
역시 살림이 어려워 보였다.
기다란 방에는 부족의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이 있었다.
어떻게 한 방에 다들 모여 사나 걱정이 되었다.
작은 탁자 위에 손으로 만든 가방과 인형, 나무 숟가락, 그릇 등이 허술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수줍게 수공예품을 사주기를 바랐다.
론지와 두건, 허리띠, 모자 등도 쌓여 있었다.
차를 기다리며 도전. 아주머니들과 함께 차렷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미리 준비한 과자를 아이들에게 주었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한 명씩 봉지에 손을 넣어 맛보더니 곧 과자를 들고 사라졌다.
더 많이 준비하지 못해 미안해.
도시를 이동하는 버스도 좋았지만 휴게소도 화장실도 좋았다.
에어컨 바람으로 추웠고 길이 나쁜지 시간이 오래걸렸지만.
휴게소에서 시킨 볶음 국수가 맛이 없었다.
막 도착한 서양 소녀가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다가와 메뉴 이름을 물었다.
난 서빙하는 직원의 귀를 피해 메뉴 대신 속삭이듯 말했다.
"이거 너무 기름져요. 낫 굿."
아름다운 소녀가 눈이 동그레 져서 크게 외쳤다.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