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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Dec 07. 2022

미얀마 사람들

미얀마 양곤

우리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 아리스토파네스 


숙소 근처에서 기차역을 찾지 못해 길을 물었다.

남자 아이가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 걷다가 방긋 웃는다.

꼬마는 내가 잘 따라오는지 보려고 자꾸 뒤돌아보았다. 

엄마도 고개를 돌려 나에게 수줍게 미소를 지었고. 

아빠는 사잇길을 알려주었다. 

역의 입구는 육교를 넘어 빙 돌아야 했으니, 이 다정한 가족을 따르길 잘했다.


철로를 가로질러 티켓을 사고 다시 와 기차를 기다리며,

숙소 샤워실의 악몽을 모두 잊었다.

사람들 옷이 화려해 내 야광 연두색 티가 튀지 않았다.

다나카를 잔뜩 바른 사람들 얼굴은 생기가 넘친다.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다니.

우리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그나저나 철로에 앉거나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건 왜일까?

꾸물꾸물 오기 때문일까? 

기차는 사람이 빠르게 걷거나 조금 뛰다가 올라탈 수 일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철로 위의 사람들은 기차가 거의 다 와서야 굼뜨게 엉덩이를 들었다.

사람들과 섞여 양곤 순환 열차를 탔다. 슬로~슬로~ 

튀긴 빵, 과자, 과일이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장사를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리가 나자 나에게 옆에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기찻길 옆으로 쓰레기가 수북했다.

나무 창문은 위로 잡아당겨 열어야 했고.

몇십 년 전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듯했다.

기차만큼 기차에 탄 사람들도 오래전 사람 같았다.

뻥 뚫린 창문마다 여섯일곱의 얼굴들이 빼곡히 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객차 통로마다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녔다.

담배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손가락만 한 병에는 하얀 물감이 가득했고.

키가 작은 다른 병들에는 향기 나는 말린 식물들이 들어 있었다.

초록 잎사귀를 편 후 흰색 물감을 반절만 바른다. 

이 위에 말린 잎들 또는 열매 같은 걸 놓은 후 네 번 접는다.

작은 비닐에 넣어 주기도 하지만 바로 말아 입 속에 넣는 사람들이 많았다.

론지를 입은 남자들이 쭈그리고 앉아 있던 자리에는 빨간 얼룩들이 있는데,

이건 잎담배를 씹다가 뱉는 자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예쁘다고 생각되는 얼굴들이 여기에서는 흔하다.

그건 남자들도 마찬가지고.

인도, 중국, 동남아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한가족처럼 섞어 자연스럽다.

싱가포르에서 인도, 말레이, 중국 사람들이 섞여 있어 몹시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양곤도 인도와 아시아인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

여러 인종의 만남이 미인과 미남을 만드는 건지.

얼굴뿐 만 아니라 몸매도 예쁘다.

게다가 친절하고 웃음이 많고 참 순박하다.

얼굴이 작고 키가 훤칠하고.

아시아 느낌인데 피부는 하얗고 이목구비가 또렷하다.

여자들은 예쁜 외모에도 이가 까맣다.

웃으면 입 속이 꼭 구멍처럼 느껴져 안타까웠다.

이가 많이 섞어 있다. 남자들도.

길거리 택시나 환전해주는 사람들은 노-우라고 거절하면 깨끗이 물러난다.

거리는 생각보다 더럽지 않았고 차들도 무질서하지 않았다.

양곤 순환 열차를 타고 센트럴에 왔다.

보족 마켓까지 걸어와 환전을 하고 버스 티켓을 예매하러 가는 데 

무척 덥고 목이 타고 속이 허전하다.

마침 싱가포르에서 즐겨 찾았던 야쿤가야 토스트가 보였다. 

아이스커피와 토스트면 충분한데 set A로 시켰더니 

돈도 추가되고 수란이 두 개 나왔다.

난 수란을 못 먹는데.

쉐다곤 파고다에 온 연인과 부부가 참 다정해 보였다.

손을 잡고 걷거나 팔짱을 끼고 걷거나.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의 손을 꼭 잡고 걷는 아빠도 보기 좋았다.

남자들끼리도 다정해 보였다.

땀냄새 암 냄새가 지겨워질 때 즈음.

때론 이 찌든 냄새가 나에게서 나는 냄새인가 킁킁거리며 의심할 즈음.

상큼한 라임 냄새가 났다.

사람들에게서 나는 이 향기가 참 좋았다.

더위와 짜증을 날려주는 냄새다.

쉐다곤 파고다는 노을빛을 받아 반짝거리더니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 아래서 더욱 돋보이고 있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더워서 현지 음식점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샤워는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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