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만달레이
행복과 우울을 가르는 것은 칼날보다도 얇다.
<올란도> 버지니아 울프
우베인 다리를 건넜다.
강물에 반쯤 잠겨 서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150년 된 목조 다리를 방문한 미얀마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리를 배경으로 반듯하게 서 사진을 찍는 스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많이 당황해하신다.
거의 건널 즈음 다리 위 벤치에 앉아, 해가 지고 있는 강과 배를 그려보았다.
라이브 드로잉은 생각보다 어렵고 역시나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부끄러움을 잊자.
선셋 보트 투어를 하려고 3명을 기다렸다.
한 배에 5000짯이라는 보트 운전자에게 미리 예약해 두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프랑스 가족이 왔다.
엄마와 아빠. 흰색 원피스를 입은 귀여운 자매였다.
큰 아이 제인이 한국 국기를 궁금해해 그려 보였다.
나는 제인에게 프랑스 국기를 부탁했고. 제인은 프랑스 국기를 그렸다.
학교에서 배우기 때문인지 요즘 국기에 관심이 많다고 아빠가 귀띔한다.
작은 아이 셀레스틴도 싱가포르 국기를 그리고 싶어 했다.
가족은 싱가포르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셀레스틴은 싱가포르 국기만 알고 있었다.
셀레스틴이 국기를 완성한 후,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배는 물 위에서 찰랑찰랑 흔들렸고 붉은 해는 강물과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들은 국기 그림을 보며 웃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배에서 내린 후 내 몫의 1000짯을 냈다.
그러나 뱃사공은 나에게 5000짯 가족에게도 5000짯을 요구했다.
이미 자리를 떠 모토 기사와 떠나려던 나를 프랑스 가족이 불렀다.
달려가 내가 한 보트에 5000짯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되묻자 뱃사공이 우물쭈물 아닌 척한다.
나는 통역이 필요할까 봐 멀리 멀뚱이 서 있는 모토 기사를 불렀다.
기다리던 사이 한 아저씨가 나타났다.
프랑스 부인 손에 있던 내가 낸 1000짯을 뱃사공에게 쥐어주었다.
뱃사공에게 그만하라는 몸짓을 한다.
많이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뱃사공을 두고
우린 모두 오케이 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좋은 기억이었는데, 뱃사공 덕에 더 기억이 남게 되었다.
여행의 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