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바간
나는 특히 봄비가 내리는 날의 오후에 이 기차에 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때는 몸이 나른해져 곧 꾸벅꾸벅 잠이 와서 졸고 있노라면,
때때로 쿵 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박자에 눈이 떠지고,
그러면 창문 유리가 수증기로 흐려져,
평야 밖으로는 고양이 털 같은 가느다란 빗줄기가
안개보다도 따뜻하게 몽롱히 피어올라
먼 곳의 탑이나 숲을 감싸고 있는,
그리하여 나라에 닿을 때까지 한 시간 남짓이 무한히 한가롭게 느껴진다.
<그늘에 대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
억수같이 내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이었다.
물보라 때문에 우산을 쓰고 퍼붓는 비를 바라보았다.
같이 방을 쓰는 지안유와 웨이지안도 나왔다.
둘은 싱가포르에서 왔다. 회사 친구라고 한다.
웨이지안은 한국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제가 본 최고의 드라마예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는 모습에 정말 감동했어요. 꼭 보세요."
아니, 외국인에게 한국 드라마 추천을 받다니.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아는지를 물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자랐어요. 대학교도 거기서 다녔고요.
한국 친구랑 방을 같이 썼어요. 아주 친했어요."
자기 명함에 '임위건'이란 한국 이름을 적어주었다.
한국어를 읽을 줄 안다고 한다. 뜻은 잘 모르지만.
한글이 좋아서 공부했다고 한다. 엇, '뿌리 깊은 나무' 때문인가?
우리는 한동안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이들은 바간을 떠나는 날이라며 흙길이 괜찮을까 걱정했다.
나는 취소가 될지도 모를 뽀빠산 투어는 어쩌나 생각했다.
P.S. 웨이지안은 몇 년 전에 한국에 왔다. 대가족 여행이었다.
명동에서 비빔밥을 먹고 촛불 시위에 갔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부산행' 좀비 패러디를 찍었다.
나는 멀리서 '좋아요'를 눌렀다. 뿌듯했다.
나 또한 '뿌리 깊은 나무'를 엄청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투어 내내 이탈리어만 쓰는 캐나다 존이 몹시 거슬렸다.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서 무분별하게 사람들을 찍고 다녔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사람을 세워놓고 오랫동안 사진을 찍었다.
이러저러한 자세를 요구했고. 게다가 우스워하기까지 했다.
사진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니.
뽀빠산 투어는 지루했고 캐나다 존 때문에 더 엉망이었다.
현금이 필요했다. 투어를 마치고 급히 자전거를 빌려 낭우에 갔다.
은행은 3시 30분까지. 시간은 이미 3시 35분. 늦었다.
은행 앞에서 덴마크 존과 다시 만났다.
나를 발견하고 뒤쫓아 왔다고 한다. 진심으로 반가웠다.
영어의 압박 때문에 피하려던 마음을 잊었다.
게다가 이렇게 다른 존이라니.
여행할 때 사람을 만나는 건 반가우면서도 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