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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미 Aug 14. 2020

불편한 것의 매력

나에게 ‘실용성’은 먼 이야기다. 나는 불편하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소위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을 사랑하는, 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비합리적인’ 인간이다. 나의 ‘비합리성’은 물건을 고를 때 빛을 발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발은 독일의 B사의 코르크 샌들이다. 여름이 되면 마치 사람들이 공동구매를 한 것 마냥 모두 이 회사의 신발을 신고 밖을 나선다. 나도 그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이 회사의 신발을 좋아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이 신발은 이 회사의 대표 신발은 아니지만, 왕왕 길거리에서 발견되는 신발이다. 발을 신발에 그냥 넣으면 신겨지는(!) 다른 모델과는 달리 내 신발은 직접 신발을 발목에 둘러야 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발목에 둘러서 버클을 채워야 한다. 아주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신발이다. 그래서 이 신발을 신을 때 가장 유의할 점은 신발을 벗는 가게에 가지 않는 것이다. 쪼그려 앉아 신발 신는 데에만 1-2분을 써버리니, 모냥도 빠지고 같이 간 사람에게 아주 민폐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이 신발은 코르크라 비가 오는 날에는 못 신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에 젖으면 빨리 망가진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가 오는 날에도 이 신발을 막 신고 돌아다녀서 망가뜨렸다. 비 오는 날에 이 신발을 신으면 발바닥에 밑창 가죽의 물이 들어 발바닥이 노래진다. 덕분에 요 며칠 계속 노란 발바닥으로 지냈다.


  상술한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신발을 사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쁘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불편한 것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미적 취향과 심미안에 따르면 편한 것은 예쁘지 않다. 실용성을 자랑하는 것들치고 내가 예쁘다고 느낀 것은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내가 물건을 사는 기준은 첫째도 예쁨, 둘째도 예쁨이다. 나는 예쁜 걸 살 수 있다면 불편하고 실용적이지 못해도 된다는 구매 지론을 갖고 있다. 편한 것은 예쁘지 않고, 예쁜 것은 불편하다. 내가 불편한 것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불편한 것’의 진가는 이 ‘불편함’에 익숙해졌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내가 이 불편한 신발에 길들여진 것인지, 이 신발이 나에게 길들여진 것인지 헷갈리는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를 때 느껴지는 쾌감은 이 모든 불편함을 견딘 뒤에 주어지는 달콤함이다. 신발에 들인 노력과 시간(과 나의 발꿈치)이 나로 하여금 이 불편하고도 고고한 신발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도록 했다. 편한 신발은 길들일 필요가 없다. 사기 전부터 이미 편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편한 신발은 길들여야 한다. 불편한 것이 익숙해졌을 때 비로소 이게 내 것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불편함 뒤에 오는 단맛을 알기 때문에 불편함을 길들여나가는 그 과정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발꿈치를 제물로 바치는 희생제의를 매번 반복한다. 물론 그 당시에는 후회하지만.


  사람도 비슷하다. 우연찮게도 나의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첫인상이 나쁜 사람들이다. 첫인상이 좋았던 사람들과는 대부분 오래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는데, 아마 관계를 꾸려나가는 데 있어서 공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신발에 발꿈치를 바쳤듯, 이 사람에게도 나의 무언가를 바치는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내 사람이 될 텐데 첫인상이 좋은, 즉 편한 사람에게는 그러한 공을 비교적 덜 혹은 안 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쉽게 실망하고, 그래서 멀어지기 쉬운 그런 사이가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불편한 것을 사랑한다.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고, 물에 젖으면 발바닥이 노래지는 ‘가성비’ 최악의 신발을 5년째 신고 있지만, 버릴 생각은 없다. 새 신발을 사도 이 신발은 손이 가장 잘 닿는 신발장 한편에 자리한다. 새 사람을 만나도 친한 친구의 연락처가 가장 위쪽에 있듯이.



뭐, 불편함도 정도 껏이야 되긴 한다. 불편해서 쳐다도 못 보겠다는 물건 혹은 사람은 한 큐에 컷이니까. 굳이 말하자면 감수할만한 불편함이 되겠다.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의 훌륭한 매력을 지녔기 때문에 공을 들이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결국 결론은 매력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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