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을지로입구 사거리 횡단보도를 지나 보신각으로, 이제는 늙어 버린 젊음의 거리를 오른쪽에 두고 센트로폴리스를 거쳐 조계사로, 왼편 멀리 광화문이 보이는 인사동 입구로 봄길을 걸었다.
아침에 챙겨 입은 트렌치는 벗어서 한 팔에 올린 채 하얀 스니커즈를 신고 흐린 봄날을 걸었다.
내게 늘 잔인했던 계절, 미세먼지로 뿌옇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면 시야가 흐려진 건지 날이 흐린 건지 나도 남도 속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주 오랜만에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질 않았다.
마음은 이미 흠뻑 젖었는데 눈 앞에 보이는 풍경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여전히 또렷하다.
가슴 가득 고인 이 진득한 감정에 붙일 이름이 없다.
정체도 모를 무거운 덩어리를 지고 사는 것이 힘겨워 한 방울이라도 밖으로 끄집어 낼까 했는데 이조차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종로경찰서를 지나 어딘가 좋은 자리로 혹은 외로운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잔뜩 실은 퇴근길 버스들을 옆에 두고 계속 걷는다.
봄바람이 잔뜩 헝클고 간 머리카락을 고갯짓 몇 번으로 흩어내고 서울대병원 오르막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채 덜어내지 못한 이 감정은 별 수 없이 깊숙이 묻어둔 채로, 봄이 올 때마다 그저 이렇게 마음 한 켠 떼어내고 싶은 채로 그렇게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