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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Mar 23. 2023

인사동 봄길을 걷다

번잡한 을지로입구 사거리 횡단보도를 지나 보신각으로, 이제는 늙어 버린 젊음의 거리를 오른쪽에 두고 센트로폴리스를 거쳐 조계사로, 왼편 멀리 광화문이 보이는 인사동 입구로 봄길을 걸었다.


아침에 챙겨 입은 트렌치는 벗어서 한 팔에 올린 채 하얀 스니커즈를 신고 흐린 봄날을 걸었다.


내게 늘 잔인했던 계절, 미세먼지로 뿌옇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면 시야가 흐려진 건지 날이 흐린 건지 나도 남도 속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주 오랜만에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질 않았다.

마음은 이미 흠뻑 젖었는데 눈 앞에 보이는 풍경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여전히 또렷하다.

가슴 가득 고인 이 진득한 감정에 붙일 이름이 없다.

정체도 모를 무거운 덩어리를 지고 사는 것이 힘겨워 한 방울이라도 밖으로 끄집어 낼까 했는데 이조차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종로경찰서를 지나 어딘가 좋은 자리로 혹은 외로운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잔뜩 실은 퇴근길 버스들을 옆에 두고 계속 걷는다.


봄바람이 잔뜩 헝클고 간 머리카락을 고갯짓 몇 번으로 흩어내고 서울대병원 오르막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채 덜어내지 못한 이 감정은 별 수 없이 깊숙이 묻어둔 채로, 봄이 올 때마다 그저 이렇게 마음 한 켠 떼어내고 싶은 채로 그렇게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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