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마흔, 운동을 시작하다
어려서부터 운동과는 거리가 먼 타입이었다.
몸을 쓰는 활동보다는 가만 앉아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편이 적성에 맞기도 했고 딱히 운동을 하지 않아도 살이 찌거나 체력이 떨어진 적 없는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천성이 게을러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신체 활동만 하기도 벅찼다.
그러다 난생 처음 진심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그 생존에 가해진 위협이었다.
재작년 겨울 나는 무시무시한 스토킹을 당했고 내 몸집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가해자에게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아니 최소한 도망이라도 칠 수 있는 체력을 만들기 위해 복싱을 시작했다.
운이 나쁠 때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복싱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뼈가 골절되는 사고를 입으며 결국 체육관을 그만두게 되었다.
몇 주 잠깐 움직인 것도 나름 운동이었는지 복싱 시작과 동시에 치솟은 식욕은 운동을 중단한 뒤에도 유지되었다.
마음 고생 하느라 살이 빠져 47kg였던 몸무게가 무려 8kg 가량 늘었다.
바지는 허리가 낑기고 윗옷은 죄다 암홀이 타이트하고 원피스는 지퍼가 올라가지 않았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초보자 입장에서 가장 시간을 적게 쓰면서 효율적으로 운동에 입문할 수 있는 PT(Personal Training)를 시작했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PT 선생님은 나보다 무려 열 살이 어린, 고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었고 성실히 수업을 진행해 주었지만 1:1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20회로 수강을 종료하게 되었다. (원체 1:1 관계에 약하다.)
그래도 PT를 받으며 내 몸의 근육이 어디에 있고 근육을 움직이려면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고, 런지니 스쿼트니 데드리프트와 같은 기본 동작의 이름도 외울 수 있었다.
이후 내가 정착한 운동은 바로 크로스핏이다.
인싸 운동이다, 격해서 부상 위험이 높다, 운동이 아니라 술을 마시려고 만나는 모임이다 등등 무시무시한 소문들 덕에 심리적 진입 장벽이 높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20회의 PT를 거치며 은근한 자신감이 붙었던 모양이다.
마침 2년째 크로스핏을 하자고 나를 꼬시던 대학교 동기 언니의 연락에 덜컥 체험 수업을 예약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체험 수업 끝에 홀린 듯 한 달을, 그 한 달 뒤엔 추가로 세 달을 결제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크로스핏 수업을 진행하는 체육관을 '박스' 라고 부르는데 내가 다니게 된 박스는 빌딩숲 한가운데 위치해 인근 직장인이 많고 평균 연령대가 높아 꽤나 점잖은 분위기다.
서로 독려하며 운동하긴 하지만 큰 소리를 지르거나 과도한 퍼포먼스를 행하는 튀는 사람은 없었고 회원들 간의 친목도 타 박스 대비 전무하다시피 한 편이라 마음에 들었다.
모두가 서로를 배려와 매너로 대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등록한 아침반 수업은 소위 미라클 모닝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그런지 늘 건강하고 긍정적인 바이브로 가득했다.
근 40년을 운동과 담 쌓고 지내던 게으름뱅이에 몸치인 내가 설마 평생의 반려스포츠로 크로스핏을 선택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한 지 3개월째, 몸무게가 3키로 더 늘 줄 역시 꿈에도 몰랐다.
**이 다음 편부터 크로스핏이 어떻게 내 삶을 긍정적으로 바꿨는지, 나는 왜 몸무게가 늘었고 어떤 체형이 되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중년 꿈나무의 입장에서 연재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