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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Aug 14. 2023

윤동주보다 기형도인 이유

조금 길고 두서 없는 '오후 4시의 희망' 독후감

오후 4시의 희망
- 기형도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나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김은 중얼거린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과 섞였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김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본다, 쏟아질 그 무엇이 남아 있다는 듯이

그러나 물을 끝없이 갈아주어도 저 꽃은 죽고 말 것이다, 빵 껍데기처럼

김은 상체를 구부린다, 빵 부스러기처럼

내겐 얼마나 사건이 많았던가,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

그러나 경험 따위는 자랑하지 말게 그가 텅텅 울린다, 여보게

놀라지 말게, 아까부터 줄곧 자네 뒤쪽에 앉아 있었네

김은 약간 몸을 부스럭거린다, 이봐, 우린 언제나

서류뭉치처럼 속에 나란히 붙어 있네, 김은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아주 얌전히 명함이나 타이프 용지처럼

햇빛 한 장이 들어온다, 김은 블라인드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가볍게 건드려도 모두 무너진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네

김은 그를 바라본다, 그는 김 쪽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즐거운가, 과장을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지루한가

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

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

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

한 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트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부암동에 가면 윤동주 기념관이 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윤동주와 그의 시를 좋아했고 부암동에서 데이트를 하든 친구를 만나든 항상 윤동주 기념관에 들러 그 삶의 궤적을 따라 걸으며 대표작들을 읊어 보곤 했다.

당시 서울 중심가의 숨겨진 핫플로 유명해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던 부암동에 시인의 기념관이 있다는 것이 참신했고, 나는 그 동네를 가로수길이나 홍대 등지와는 차별화되는 뭔가 특별한 곳으로 만드는 포인트는 바로 이 윤동주 기념관이라고 생각했다.


기형도의 시를 읽어 놓고는 웬 뚱딴지 같은 윤동주 얘기냐 하면 다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시집 구매를 위해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알라딘 중고서점을 방문했었다.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에 가는 것은 원래도 자주 하는 식상한 일이고, 왠지 이번엔 내가 절대 하지 않을 법한 일을 시도해 보고 싶었던 마음이랄까.

(원래 남이 보던 책은 책장 사이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절대 읽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처음 방문한 알라딘 중고서점 합정점은 이게 웬걸 생각보다 넓고 쾌적하고 깔끔했다.

원하는 책이 꽂힌 서고를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어 놓은 것은 물론 공간 구획이나 시설, 직원의 과하지 않은 응대 태도도 기대 이상이었다.

중고 서점이라 하면 청계천 헌책방만 떠올리던 나로서는 합정이라는 땅값 비싸고 젊은이들 많은 동네 대로변에 이렇게 세련된 형태로 알라딘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회가 디지털화 되고 IT기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그럴수록 아날로그와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실제로 인문학 열풍이 수년 전부터 붐처럼 일었고 관련 서적이나 강연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학에서는 순수인문학의 연구를 넘어 쉽게 이해되고 삶에 도움을 주는 실용인문학 강의 수요가 팽창하면서 문화콘텐츠학, 문화기획학, 문학치료학 등의 새로운 인문학 트렌드 역시 만들어지는 추세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삶의 편리성은 높아졌지만 개인주의, 빈부격차, 부정부패, 희망 없는 삶에 대한 돌파구로서 인문학으로의 회귀가 등장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비단 이러한 염세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나 자신에 주목하고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고자 하는 MZ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되면서 인문학이 주는 깊이와 남다름에 열광하는 것 역시 예측 가능한 트렌드다.

헌책방에 가서 굳이 절판된 고전을 찾아 읽거나 외국어 학습과 같은 자기 계발에 매진하는 한편 여가 시간에 한적한 카페에서 시집과 철학책을 탐독하는 사람들이 확연히 늘어나고 있다.

문명의 이기가 제공하는 편리함을 당연하게 이용하면서도 어딘가 남과 다른 면모를 갖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자신을 특별한 캐릭터화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문학은 무한한 자기차별화 소재의 보고다.

수만 갈래의 인문학 카테고리 중에서 스스로와 가장 결이 같은 재질을 선택해 거기에 몰두하고 탐닉하면 되니까.




윤동주와 기형도의 갈래에서 이번에 나는 기형도를 선택했다.

같은 대학 동문에 요절했고 유고 시집 단 한 권으로 여태껏 존재감을 드러내는 면이 굉장히 닮아 있는 두 사람이지만 또 정말이지 다른 타입의 시인이기도 하다.

항상 윤동주의 선하고 잘생긴 인상과 특유의 서정적 슬픔의 정서를 사랑해 왔지만, 왠지 그 날 시집을 고를 때의 나의 감정은 기형도였다.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철학이 참회였던 바르고 선한 윤동주보다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고 삶의 어두운 단면과 죽음의 미학에 집중했던 덜 알려진 천재 기형도가 당시의 내게 맞는 것 같았기 때문.    


늘 뒤틀리고 모난 돌이어서 정 맞는 데 익숙한 나였기에 기형도의 언어가 윤동주의 시보다 편안했다.

그의 어둡고 부정적인 단어들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었다.

하루하루가 끔찍해서 도저히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 때의 나에게 필요했던 건 빛 속에 선 채 내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아닌 나를 껴안고 함께 심연으로 침잠해 줄 단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나를 환한 빛으로 강력히 끌어당겨줄 사람도, 함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줄 사람도 만나지 못했지만 가끔씩 마음이 너무 아프고 외로울 때엔 책장 속 기형도의 시집을 꺼내 조용히 읽으면 된다.

아마도 끝끝내 쓸쓸했을 시인의 문장이 내 마음을 거칠게 어루만져 주니까.

너만 외롭고 힘들고 아픈 게 아니라고, 나도 그렇다고 이야기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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