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 Feb 02. 2022

프리랜서 방송작가라 행복하다

마흔네 살의 용기

열두 번째 이력서를 마지막으로 더는 이력서를 쓰지 않고 있다.

구직을 포기한 건 아니고 열두 곳에 보낸 이력서 중, 다섯 곳에서 연락이 왔고, 두 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세 가지의 일을 동시에 했었다.

시간과 에너지만으로 보면 세 개 다 못 할 건 아니었지만, 세 번째 일을 포기한 건 방송작가로 20년을 살아오면서 나름 발달해 온 직감, '촉' 때문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뭔데?"라고 물으면 딱 떨어지는 답을 할 수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처음 면접 볼 때부터 느껴졌던 찜찜함을 계속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알던, 익숙하게 일하던 세계가 아닌, 전혀 새로운 사람, 채널, 시스템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불안한 거야,라고 넘기기에는 찜찜함의 커지는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급기야 세 번째 미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찜찜하다'는 말을 열 번도 더 넘게 했다.

그 얘기를 남편에게 듣는 순간,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 '나는 연차가 너무 많아', '아무도 나를 안 써줄 거야',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나는 수명이 끝났어', 이런 생각들로 하루하루가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나이가 얼마나 일하기 좋은 나이인지, 내 경력이 얼마나 탐나는 이력인지, 의심하지 않는다.


요즘 나는 두 가지 일에 만족하지 않고 세 번째 일을 알아보고 있다.

이 시도를 통해 어떤 성장을 하게 될지,

어떤 문을 통과해 어디로 가게 될지,

어떤 확장을 하게 될지,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불과 한 달 전의 나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된 건, 무모하지만 열두 곳에나 이력서를 돌렸던 '용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흔다섯 살이 되어도, 쉰 살이 되어도, 나는 언제나 용기를 내는 작가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두 번째 이력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