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빈에 대하여® / 1명을 죽이는 짓과 한사람을 살리는 일의 차이
뉴스를 보면 충격적 사건을 다룰 때
시작보다 결과라는 초점을 맞춰 편집되어 있는 것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 인간은 심리적으로 나쁜 사건에 흥미를 이끌기 때문에
뉴스의 대부분은 Negative 사건을 더 강력하게 편집하여 송출한다.
전달의 목적보다 뉴스의 생존에 우선순위를 두는 아이러니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 }
가짜 뉴스에 속는 이유는 의도된 편집된 장면만을 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보이는 것만으로 결과론적 해석을 한다면 죽음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현실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생태계라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식욕을 삼켜야 하는 것은 동물만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또한 인간도 100% 동물이다. 그리고 식물도 살아있다.
그런 관점으로,
전체를 맥락이 아닌 편집적으로 본다면,
엄마로서 에바는 모성애가 결핍된 여자이고 아이로서 케빈은 사이코패스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결코 문제를 풀 수 없다.
콜럼바인 총격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총기사건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공간은 다르지만 군대에서 일어나는 총기난사 건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어느 아버지의 인터뷰처럼 군대 가서 참으면 윤 일병이 되는 거고 못 참으면 임 병장이 되는 현실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가 여전히 되풀이되는 현재에서 비극적 참사를
그저 괴물이 저지른 사건이라는 1차원적인 시각은 과정을 변질시킨다.
총기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의 외면적 결과가 아닌 내면적 과정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은 관계에 있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이해할 수 있다.
군대가 지옥처럼 느껴지는 건 죽을 거 같은 훈련이 아니다. 죽이고 싶은 사람 때문이다.
그렇다. 현실의 지옥은 상황이 아니라 사람(타인 : 관계)이다.
그랬다. 모든 문제는 뒤틀린 관계로 관통된다.
최근 10년간 군내 사망사고 10건 중 7건은 자살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부터 2025년 9월까지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총 722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자살로 인한 사망은 501건으로 전체의 71.2%를 차지했다. [생략...]
군별로 보면 육군에서 458건의 사망사고 중 354건이 자살로, 전체 대비 77.3%에 이르렀다.
공군은 118건 중 79건(66.9%), 해군은 112건 중 54건(48.2%), 해병대는 34건 중 14건
(41.2%)이 자살에 해당했다.
"군 사망자의 70% 이상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은, 군 조직 내 인권보호와 정신건강 시스템이
심각한 위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 출처 : 창업일보. 김지훈 기자 」
감사합니다.
여기는...
인간관계는 없고 { 너 와 나는 관계가 없다 }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소름 끼치게 메아리 되어 울리는 곳.
지금까지,
타인은 지옥이었습니다.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 마크 트웨인 」
누군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플 때가 있다. 그곳에서는
한 사람의 실존적 자아가 타인에게 침해당하는 순간 약자가 된다.
약한 자는 작은 충격에도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감정이 조금씩 쌓여가다 구속된 감정이 극에 달하면 모든 관계에서 타인은 지옥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생각한다. "지옥에 적응하려면 괴물이 돼야 한다."
이런 미친 생각을 한다는 건 제정신이 뚫고 나가 망각에 이른 상태다.
어쩌면,
그들은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살기 싫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곳에서
타인은 지옥이고
너 와 나는 관계가 없다!
는 비명소리가 소름돋게 메아리 친다.
되돌이표로 울려 되는 애처로운 비명 소리
반복해서 듣게 된다. 비명소리가 현실과 닮았다.
여기서. 한가지 확실히 하자면,
그들에게 서사를 부여하거나 그들을 이해해 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명백하게 "지금도 누군가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시점과 초점은
명백히 다른 뜻이다.
그렇다.
어떤 때는, 1명을 죽이는 것보다
한 사람을 살리는 게 더 힘들다.
그렇다면, 사람을 죽이는 총기 문제만큼
사람을 죽고 싶도록 만드는 뒤틀린 관계 문제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
결과를 해결하기 위한 급급한 방안은 죄를 저지른 사람을 벌하면 된다.
그렇지만, 메아리 처럼 반복되는 사건 속에 불안감을 해소하려 그저 하나의
대상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 문제를 해소하려 한다면 평생 더부룩함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총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의 결과를 마무리 짓기 위해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 마침표로 사용한다면,
같은 과정이 되돌이표로 울려 되는 애처로운 비명 소리를 누가 멈출 수 있단 말인가?
"블랙박스는 24시간 돌아간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확인한다."
사회적 자살을 하면서
어떠한 대상을 미워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 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절망까지 사랑할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