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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Spir e Dition X May 14. 2024

[e] 그 시절 우리가 있었다.® #6

■ #06. 내게도 이토록 넓은 세상이 있다는걸...


#06. 제주바람에 남기고 온 다섯 이야기


# 하나

내 젊은 날들이여. 강이 흐르듯이 흘러가 떠내려가는 시간에 불안을 가득 채우고 다가오는 시간에 치이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살아왔구나. 어찌 이리됐을까?! 이제 생각하기는 싫다. 어찌해야만 할까?! 이런 생각도 하기 싫다. 행복 따위 바라지 않으니 원망 따위 하지 않겠다.      


# 둘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은 모든 것에 대하여 인정하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것들은 후회들이 아니라 사실일 뿐이다. 이미 일어난 일들이고 돌이킬 수도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앞으로도 현실은 나에게 관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 셋 

때 묻지 않는 감정으로 사랑했던 그 순순했던 소년의 마음. 영원할 거라 믿을 수 있었던 그 순간들.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눈만 감으면 스르륵 잠들 수 있던 밤. 매일 처음이라는 느낌을 마주할 때마다 설레었던 그 순간들. 무엇을 상상하든 한계를 두지 않았던 아름다운 환상들. 아무것도 불안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 걱정 없이 내가 이끌리는 것들에 묻혀 살았던 그때그때 그때.      


# 넷 

어릴 적 잃어버렸던 소년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소년이 나의 눈앞에 멈추었고, 난 키를 낮추고 그 소년을 안아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해. 네가 원하던 너는 지금의 내가 아닐 텐데. 내가. 아닐 텐데. 소년이 나를 감싸 안으며 나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지금의 너를 이해해줘.      


# 다섯 

문득 부산에 나 홀로 여행을 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무엇을 위해 떠나는지도 모른 체 그냥 습관처럼 느끼던 시집 안에 담긴 그가 써 내려간 시 한 편으로 인해 무작정 떠났었다. 나 자신이 미워 떠났던 여행이었다는 걸 그곳에 도착해서 느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넓은 바다와 태양이 만나는 그 영원할 것 같은 경계선을 한없이 바라보다 안정감을 찾기 위해 내 옆에 나란히 서있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게도 이토록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느꼈다. 어느 순간 이 녀석들과 함께 느끼는 순간들이 내 생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이 녀석들과 함께 있으면 안도감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존재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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