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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의 불협화음

<레볼루셔너리 로드>

by 곽준원 Mar 15. 2021

모두가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은 기차를 타며 출근하는 일상에서 과연 특별함이란 존재할까. 가슴속에는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나아갈 꿈을 지닌 채 말이다. 그 꿈마저 희미해져 잃어버린 삶은 희망이 없는 무료한 삶일까? 이러한 삶에 한 가닥 희망의 불씨를 살려 탈피하고자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남들과 다른 삶을 살려고 용기를 내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을지도 모른다. 안정적인 삶과 불확실하지만 현실과 다른 두근거리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삶에서 갈등은 빚어진다.


연극을 배우고 무대 위에 서는 에이프릴은 전혀 늘지 않는 연기력으로 배우라는 직업을 그만둔다. 자연스럽게 가장으로 가족을 홀로 부양하는 프랭크는 회사원으로 잔잔한 일상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하고, 차를 운전하여 역에 주차하고 뉴욕까지 기차를 타고 출근한다. 기차에는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쓰며, 양손에는 신문을 펼쳐든 신사들이 가득하다. 행여나 다른 모습이라면 비난 세례를 받을 듯한 풍경이다. 프랭크도 내심 이러한 삶이 못마땅하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는 이러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갈등을 빚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희망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멋진 남자 프랭크와 그를 동경하며 결혼한 여자 에이프릴은 뉴욕 맨해튼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교외 지역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에 정착한다.


※ 본 내용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하아... 이렇게 계속 살수 없겠지?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갈 것처럼 여겨진 결혼 생활이지만 에이프릴과 프랭크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편의 생일 전날 심하게 다투고 나름 중견 기업에 다니는 남자는 회사 여직원과 낮 시간에 술을 마시며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집에 가는 기차 시간을 놓친 남자는 늦은 저녁 시간 도착한다. 그를 반갑게 맞아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에이프릴과 두 아이.


사실 에이프릴은 이러한 생활이 끔찍하다.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이지만 남들에게는 특별하게 억지로 보여야 하는 삶의 가식을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매일 잔잔하게 반복되는 무료한 삶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결국 에이프릴은 삶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가족 모두 프랭크가 멋진 도시라고 불렀던 파리로 이동하려고 계획한다. 지금까지 가족을 부양한 프랭크 자신도 절대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다던 생각을 떠올리며 부인의 말에 동의한다.



똑같은 모습의 도시인

모두 똑같은 옷차림...


누군가 성공한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행동은 경제부흥 시기에 당연한 모습이다. 특히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1950년대 미국은 그야말로 성장세가 엄청났다. 경제 성장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듯한 느낌을 충분히 받을 것이다. 인간은 집단에서 벗어나 홀로 살지 못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환경에서 홀로 외로이 다른 생각을 한다면 주변 사람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생각을 혁신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사회 흐름을 읽지 못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똑같은 생활 패턴에서 행복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에이프릴은 완전히 새로운 삶은 꿈 꾼다. 프랭크가 어린 시절 파리에서 생활했던 그 모습을 동경하며 그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러한 부부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응원해 주고, 공감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에게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모습이 무언가 아웃사이더를 연상케 했다.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모험의 두근거림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능이다. 이러한 내면의 욕구를 무시하고 안전지향적인 삶에서 과연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에이프릴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다른 이상향이 정신 이상인가


동네에서 럭셔리한 집을 소개해 준 중개인은 자신의 아들이 정신 병동에 있다고 말한다. 특별한 부부라고 생각한 중개인은 자신의 아들을 한 번 만나보면 어떨지 부탁하고 에이프릴은 약간의 망설임을 보이지만 수락한다.


함께 보인 자리에서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파리로 이동하려는 계획을 이야기한다. 중개인의 아들은 희망이 없는 곳을 떠나겠다는 부부의 말에 처음으로 공감해 준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자신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공감해 준 사람이 정신병자로 낙인찍힌 사실을 인지한다.


그렇지만 부부와 친하게 지내는 다른 부부는 그들이 파리로 떠난다는 말에 겉으로는 공감하지만 속으로는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을 마뜩잖아 한다.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공감을 받았지만 결국 비정상적이라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의미다. 그래도 자신의 이상향을 향해 에이프릴은 멈추지 않고 파리로 떠날 준비를 지속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가. 프랭크는 직장에서 제안서가 연달아 반려당했지만, 퇴사를 결정하고 파리로 떠난다는 생각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업무를 진행한다. 그런데 그의 아이디어가 혁신적이라며 사장이 프랭크가 일하는 부서로 직접 찾아온다. 사장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승진의 기회가 언급되고 기회를 잡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는다. 거기에 더해 아내는 세 번째 아이까지 임신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랭크는 불확실한 파리로 간다면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한다. 게다가 세면도구 서랍에서 낙태 도구를 발견한 프랭크는 에이프릴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에이프릴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자신의 상황에서 겉으로 아닌 척 사는 모습을 견디지 못해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하지만, 승진의 기회와 더불어 지금 사는 곳에서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심하게 싸운 다음날 에이프릴은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프랭크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떤 요리를 해줄지 물어본다. 분명 전날 프랭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싫어한다고 말을 내뱉었는데 차분해진 모습에 프랭크는 환한 미소를 짓고 평소와 동일하게 회사로 출근한다.


프랭크가 회사로 출근한 모습을 확인한 에이프릴은 12주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낙태 도구를 꺼내어 시도한다. 혼자 시술을 끝낸 에이프릴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급히 구급차를 부른다. 출혈이 멈추지 않아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이 되돌아오지 않은 에이프릴의 소식을 접하고 프랭크는 크게 낙심한다.

홀로 두 아이를 부양하는 프랭크...


결국 남편은 앞마당이 있는 2층 집을 처분하고 자녀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보며 수심에 빠져있는 모습에서 행복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살았던 집에 또 어떤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이 삶을 살아갈까.



집을 소개한 중개인은 지금 사는 부부가 적절한 집 주인이라고 판단한다고 겉으로 특별하다는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이전에 살던 부부도 분명 그랬다고 남편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 뒤로 중개인의 입에서는 험담이 계속 이어진다. 보청기를 끼고 있던 중개인의 남편은 점차 소리를 줄인다.



기대치와 실망감은 비례 관계다.

진화심리학자 대니얼 네틀은 인간의 습성을 이렇게 비유했다. "딸기밭이 마음에 들어도 강 건너에 좋은 연어 어장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렇지만 그 누군가는 딸기밭을 지키려고 새로운 호기심을 억누르며 삶을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질주하며 새로움에서 즐거움을 찾지만, 그 누군가는 무료하지만 안정된 삶을 지향하기도 한다.


에이프릴은 반복된 삶을 탈피하고자 파리라는 도시를 꿈꿨다. 그러한 기대치만큼 프랭크의 결정에 실망감은 비례했다. 안주하는 현실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한다면 한 번쯤 새로운 시도와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늘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길을 따라 걷는 인간에게도 조금은 색다른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무료함과 매너리즘으로 가득한 삶일 것이다. 실망은 크지 않겠지만 기대도 없는 삶이다.



#레볼루셔너리로드 #샘멘데스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 #케이트윈슬렛 #현실과이상의괴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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