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일이 먼저..
회사에 출근을 하면 저는 늘 비슷한 순서로 움직입니다. 커피를 머그컵에 타고, 휴대폰 알림을 훑고, 오늘 일정표를 확인한 후 할 일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한 루틴인데, 어느 날은 똑같은 루틴을 밟으면서도 속이 자꾸만 불편했습니다.
특별히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느낌, '오늘은 왜 이렇게 무겁지?'와 같은 질문이 하루 종일 배경음처럼 깔리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예전에는 대충 결론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피곤해서 그런가. 요즘 일이 많았긴 해. 최근 나이가 들고 나서 부쩍 더 그런 거 같은데..'
대충 이렇게 원인이라고 될 만한 사항을 나열하면 마음이 잠깐 조용해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조용해진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감정은 물처럼 새어 나와 결국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말투가 짧아지거나, 별일 아닌데도 쉽게 짜증이 치밀거나, 집에 오자마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식으로요. 더 심할 때는 아예 말도 하지 않고, 기분 나쁜 표정을 내내 상대방이 알정도로 드러냈습니다.
그즈음 저는 '자기 이해'라는 말을 다시 붙잡게 되었습니다. 흔히 '자기 이해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듣지만, 실제 생활에서 그 말이 체감되는 순간은 대부분 위기 뒤에 찾아옵니다. 감정이 폭발하고 나서야 '내가 갑자기 왜 그랬지?'라고 묻는 식입니다. 저는 그 질문을 좀 더 앞당겨 보고 싶었습니다. 폭발 뒤가 아니라, 폭발 직전의 미세한 흔들림을 알아차리고 싶었습니다.
가장 먼저 부딪힌 건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상담을 원하는 대상자에게 질문하는 영상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지만 너무나도 답변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질문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보통 자신을 너무 익숙한 방식으로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직업, 역할, 성격, 저는 오랫동안 저를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회사에서는 문제 해결을 잘하는 사람'으로, '타인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람'으로 소개해 왔습니다. 그 정의가 틀린 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정의가 저를 가둬버리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언제나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책임지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때 떠오른 게 '자아'와 관련된 설명이었습니다. 자아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비교적 일관된 개념'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세 가지 그림이 같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나(실제 자아), 되고 싶은 나 (이상 자아), 남들이 보는 나(사회적 자아). 저는 그 세 그림이 서로 가까이 있을 때는 별문제 없이 살았는데, 어느 시기부터는 그 간격이 커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실제의 저는 지쳐 있고, 어떤 날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런데 이상 자아는 늘 당당하고, 흔들리지 않고, 여유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회적 자아는 또 다릅니다. 누군가에게 저는 '늘 침착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 틈에서 저는 종종 '연기'를 했습니다. 괜찮은 척, 여유 있는 척.
이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실제 자아를 끌어올리는 연기였습니다. 연기가 꼭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연기를 오래 하면 몸이 먼저 지칩니다. 에너지를 상당히 많이 쓰니까요. 그래서 마음은 더 빨리 지칩니다.
이 지점에서 감정이 등장합니다. 저는 예전에는 감정을 '기분' 쯤으로 취급했습니다. 좋으면 좋은 거고, 나쁘면 나쁜 거지, 굳이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감정을 조금 진지하게 바라보니 감정은 생각보다 성실한 '신호'였습니다.
감정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흔들리거나, 무언가 위협을 받을 때, 혹은 내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충족되지 않으면 활성화됩니다.
화가 나는 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아래에는 종종 억울함이나 두려움이 있었고, 짜증이 반복될 때는 외로움이나 피로가 숨어 있었습니다. 감정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정보였고,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힘'이었고, '관계에서 내 상태를 전하는 표지판'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회사 생활하면서 더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어느 날 회의에서 제가 며칠 밤을 새 가며 작성한 제안이 가볍게 넘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제안을 하고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어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죠. 그 이후에 회의실에서 가볍게 나온 말 한두 마디 피드백에 웃으며 넘겼지만, 자리로 돌아오니 속이 쓰렸습니다.
처음에는 '짜증 난다'로 끝내려 했는데, 마음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니 그건 짜증이 아니라 '무시당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공들여 준비한 제안이 통째로 사라지는 순간, 제 안에서 어떤 가치가 흔들렸던 겁니다.
'나는 존중받고 싶다.' 그 가치를 인정하니까 감정이 조금 또렷해졌습니다. 감정이 또렷해지니 행동도 달라지더군요. 다음 회의에서 비슷한 주제가 나오면, 제 의견을 한 문장으로 먼저 정리해 두고, 필요하면 자료를 한 장으로 덧붙이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온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합의된 논의를 거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감정 소모를 줄였습니다. 감정이 행동을 이끄는 '심리적 연료'라는 말이 그때 실감 났습니다. 감정이 나를 휘젓게 하도록 방관하지 않고, 감정이 내게 방향을 알려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대로 감정을 무시하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도 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면 그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쌓이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합니다. 저는 어떤 날은 별일이 없었는데도 몸이 무겁고, 이유 없이 예민해지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몸으로 우회해서 나타나던 시기였습니다. 말로 꺼내지 않은 서운함이 근육을 긴장시키고, 인정하지 않은 불안이 잠을 설치게 만들고, 외면한 슬픔이 무기력으로 변해 있었던 겁니다. 감정은 묻어두면 없어지지 않고, 형태를 바꿔서 다시 나타납니다. 저는 그걸 '지연된 청구서'라고 부르곤 합니다. 결제는 안 했지만, 비용은 계속 쌓이고 있다가 언젠가 한꺼번에 청구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단순한 실습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를 끝낼 때, '오늘 가장 나다웠던 순간은 언제였지?'를 묻는 것. '오늘 내가 한 행동 중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었던 건 뭐였지?'를 묻는 것. 그리고 한 문장으로 질문의 답변을 적어놓는 것.
"나는 __한 사람이다."
이 문장이 처음에는 참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빈칸을 채워보면, 그날의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정직하게 드러납니다. '나는 오늘 조금 예민했던 사람이다.', '나는 오늘 인정받고 싶었던 사람이다.', '나는 오늘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이다.' 이렇게 적어두면 감정이 더 이상 정체불명의 덩어리가 아니라 '이름 붙은 존재'가 됩니다. 이름이 붙으면 다루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불확실한 것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고 명확한 이름을 붙이면 최소한 겁은 덜 납니다.
자기 이해가 주는 변화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삶이 갑자기 찬란해지거나,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다거나, 관계가 자동으로 개선된다거나.. 그런 변화가 먼저 오지는 않습니다. 대신 아주 현실적인 변화가 찾아옵니다.
감정이 활성화되는 순간 '아.. 또 겁나게 짜증 나네.'라고 몰아붙이기보다, '지금 내 안에서 어떤 신호가 울리네.'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감정을 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감정에 끌려 다니는 느낌도 줄어듭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돌봄과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사실 말이죠.
저는 아직도 종종 우울하거나, 불안해서 흔들립니다. 아직도 직장 내에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걸리면 마음이 뒤집히고, 집에서 와서야 '아까 그 말이 왜 그렇게 아팠지?'를 다시 생각해 보곤 합니다. 다만 이제는 그 질문을 '나는 왜 이럴까?'로만 끝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반응했지?'를 묻습니다. 그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삶이 조금씩 '내 것'이 됩니다. 감정은 내 삶의 운전대를 뺏으려는 존재가 아니라, 운전대를 다시 잡으라고 알려주는 경고등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자기 이해는 끝이 있는 작업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생활 습관에 가깝습니다. 아주 작은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건네는 일, 아주 짧은 문장으로 오늘의 나를 기록하는 일, 그리고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일. 저는 그 단순한 반복이 결국 변화의 시작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내 삶의 방향은 거대한 결심으로 바뀌기보다 오늘 하루의 사소한 알아차림으로 조금씩 바뀌니까요. 급격하게 바뀐다면 그건 변화가 아니라 변신입니다. 그러니 조바심은 잠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한 번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오늘의 나는. 누구였습니까?"
그 질문을 하며 대답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변화는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