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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달빛 Sep 08. 2023

질문 7번. 새벽 3시, 쥬필란다스와 콤팩타의 대화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중 7번>

글쓰기 질문 7/642: 화초가 죽어가고 있다. 화초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




- 콤팩타: 헤이!



쥬필란다스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절한 것인지 가지를 길게 늘어 뜨린 채 미동도 없다. 시간은 새벽 3시. 집주인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콤팩타는 목소리를 낮춰 쥬필란다스에게 속삭였다. 며칠 사이에 쥬필란다스의 가지에서 풍성하게 자라나던 잎사귀 수가 점차 줄어 들었고, 누렇게 뜬 잎이 부쩍 늘어나고 있었다. 쥬필란다스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콤팩타는 점점 초조해졌다.



- 콤팩타: 헤이, 쥬필란! 일어나라구!



콤팩타가 속삭이던 목소리의 볼륨을 살짝 높이고 호흡을 가득 실어 쥬필란다스를 다시 한번 불렀다. 그 소리에 쥬필란다스의 잎사귀 몇 개가 움찔거렸다. 



- 쥬필란다스: 어... 콤팩타. 미안해... 내가 귀가 안 좋아서 그렇게 멀리서 부르면 잘 못들어.



쥬필란다스의 목소리에 가래가 가득 낀 듯했다. 그는 겨우겨우 한 호흡씩, 쇳소리를 내가며 대답했다. 원래는 쥬필란다스와 콤팩타는 햇볕이 가장 많이 드는 앞베란다 정중앙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런데 몇 주전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주인이 커다란 쥬필란다스 화분을 현관 쪽 구석으로 끙끙대며 옮겼다. 그게 집안 구조 상 더 밸런스가 좋아 보인다나 뭐라나. 어딘가에서 쥬필란다스에게는 너무 직사광선을 쬐이면 좋지 않다는 헛소리를 듣고 오더니 화초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옮겨 버린 것이다.



- 쥬필란다스: 콤팩타... 미안해, 난 이제 틀린 거 같아.


- 콤팩타: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작스러운 쥬필란다스의 말에 콤팩타가 볼륨을 조절하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콤팩타 외침에 곤히 자고 있던 집주인이 움찔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콤팩타는 흙으로 스며들었던 수분이 다시 잎사귀로 역류하여 식은땀이 삐질 나는 것 같았다.



- 쥬필란다스: 이번 이사할 때 너무 추웠어... 그 때 얼었던 몸이 녹지 않아. 뿌리가 얼어버렸나봐. 물도 화초영양제도 더 이상 못 먹겠어.


- 콤팩타: 알아, 맞아 그때 너무 추웠어. 나도 죽다 살아났으니까. 



콤팩타가 지난 12월 눈이 펑펑 내리던 이삿날을 떠올리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 쥬필란다스: 힘이 없어서 잎사귀도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가 없어.


- 콤팩타: ...이 망할 주인놈 같으니. 제대로 못 키울거면 아예 데려오질 말았어야지! 어후, 열받아!!


- 쥬필란다스: 주인 욕하지 마... 그럴거 없어. 이사하는 동안 우리가 얼지 않게 하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었잖아.



쥬필란다스는 잎사귀를 붙잡고 있을 힘도 없다면서 집주인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콤팩타는 그 모습에 괜히 더 심통이 났다. 콤팩타는 불과 6개월 전 집주인을 만났다. 그 전에는 완벽한 컨디션으로 관리해주던 화원에 살고 있었다. 그는 그 화원이 아주 마음에 들었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손님들이 화원에 들어와서 그의 잎사귀를 만져보고 앞태와 뒷태를 살펴볼때면 행여나 자신을 데려가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눈썰미 좋은 집주인에게 딱 걸려 울며 겨자먹기로 안온했던 화원을 떠나와야했다.


- 콤팩타: 쥬필란, 집주인 편들지 마. 화초영양제 뚜껑도 제대로 열어주지 않았다고. 이거 봐. 영양제가 1분에 한 방울씩은 흘러 들어가야 하는데 1분은 무슨... 하루에 한 방울 겨우 흘러 들어갈까 말까 하는 것 같아.


- 쥬필란다스: 그래도 그 영양제 엄청 좋은 걸로 골라서 산 것 같던데.


- 콤팩타: 저번에는 주인놈이 네 잎사귀도 모조리 다 따 버렸잖아! 내가 정말...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 쥬필란다스: 나는 잎사귀를 다 따버려도 그 자리에서 다시 잎사귀가 나니까... 너무 오래된 잎사귀들이 남아 있으면 오히려 영양분 흡수에도 방해되고 또...


- 콤팩타: 그건 그렇다 쳐. 물도 제대로 안 주잖아! 나 2주 넘게 물도 못 마신 거 같아. 너도 그렇지 않아?


- 쥬필란다스: 그 동안 날씨가 너무 습했으니까. 나를 이 집으로 데려올 때 집주인이 화원 주인한테 물을 얼마나 자주 줘야 하는지 열심히 물어봤었다고.



콤팩타가 계속해서 집주인 흉을 보자, 집주인을 변호하는 쥬필란다스의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물도 화초영양제도 더 이상 못먹겠다던 힘빠진 그가 아니었다.



- 콤팩타: 너.. 완전히 주인놈 편이구나?


- 쥬필란다스: 날 정말 아껴줬어. 벌써 10년이나 함께 했지. 너는 이제 6개월밖에 안됐으니, 아직 정이 별로 안들었겠다. 가끔 나에게 새 잎이 나면 신기해 하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너무 예쁘다, 하면서 매만져 주기도 했어. 그럴 때면 나는 기운이 나서 줄기를 더 힘차게 위로 뻗어 올렸지.


집주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하는 쥬필란다스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누렇게 떠서 곧 떨어질 것만 같던 잎사귀에도 다시금 초록빛이 도는 듯 했다.


- 콤팩타: 그런 주인을 놔두고, 너 혼자 편히 눈 감을 수 있겠어?


- 쥬필란다스: 응?


- 콤팩타: 이제 틀린 것 같다며!


- 쥬필란다스: 아, 그게...


쥬필란다스는 당황하며 나무줄기를 파르르 흔들었다. 


- 콤팩타: 바보야! 다시 한번 기운 내봐. 줄기를 좀 더 힘차게 위로 뻗어 보라고. 집주인이 더 자주 들여다 볼 수 있게 잎사귀도 살랑살랑 흔들어 보란 말이야. 나는 너의 생명력을 믿어. 저번에 집주인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네가 이 집에서 가장 오래 살아 남았다며. 다른 친구들 세상을 떠날 동안에도 너 혼자만 자기 곁을 지켜줬다고 말하더라.


- 쥬필란다스: ......


- 콤팩타: 다시, 힘 내볼꺼지?


- 쥬필란다스: ...응, 나 다시 힘내볼게. 우리 집주인 결혼하는 거 까지는 지켜 봐야지.


쥬필란다스의 말에 콤팩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싱긋 웃기만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뾰족한 잎사귀를 길게 뻗어 쥬필란다스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새벽 3시의 달빛이 쥬필란다스와 콤팩타의 잎사귀 끝에서 반짝였다.




<굴쓰기 좋은 질문 642> 책 중에서 마음이 가는 주제를 골라 글을 씁니다. 글의 형식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엉뚱한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저의 성향상 아무래도 소설 형식의 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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