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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울 Mar 19. 2024

운수 나쁜 날

아침편지 4



해물이 아닌 육수(고기맛) 칼국수였는데, 아쉽게도 입맛에 잘 맞지 않았어요.


  눈을 뜬 채로 침대에 누워 시간을 좀 더 보냈어요. 느긋한 아침! 출근을 하지 않으니 매일이 휴일이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주말은 더 좋습니다. 창문을 열고 이불을 모두 치워봅니다. 기존에 쓰던 매트리스 커버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생겨서 바꾸려고 새 제품을 샀거든요. 미리 세탁과 건조까지 마쳤지만, 남편과 같이 매트리스를 완전히 들어올려 바닥 청소까지 하려고 주말을 기다렸습니다. 새 커버를 씌운 김에 깔고 자는 패드도 세탁합니다. 패드는 두 개를 세탁해가며 번갈아 쓰는데 몇 년 쓰다보니 하얀 패드에 얼룩이 생겼어요. 이참에 패드도 새로 바꿀까 잠시 고민해봅니다. 집에 있으니 여기 저기 할 일이 왜 이렇게 많이 보일까요?

  점심은 가까운 식당에 가서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오래된 곳이고 꽤 유명해서 주말에는 자리가 없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모든 자리가 꽉 찼더라고요. 출입문 앞 자리에 겨우 앉았습니다. 칼국수 두 개, 수육도 하나 주문해볼까 고민해보다가 한 접시에 3만원이나 하길래 먹지 않기로 합니다. 칼국수 국물이 해물이 아닌 고기 육수 맛이더라고요. 사골국물 맛이 나쁘지 않았지만, 면에서 밀가루 냄새가 조금 나서 제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김치가 맛있다고 들었는데 이것도 제게는 좀 텁텁한 느낌이었어요. 시원하면서 매운 새 김치를 좋아하는데 여긴 김치가 조금 달더라고요. 엄청 오래된 식당이고 손님이 많아 기대했는데 영 아쉬웠습니다.

  우리 옆자리에 앉은 어린이는 아주 큰 소리로 휴대전화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어요. 뒷 자리 손님들도 계속 힐끔힐끔 뒤돌아볼 정도여서 저는 최선을 다해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식당 안에서도 그 모든 소리를 압도할만큼 큰 음량이었어요. 저는 가방에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꺼내 착용한 채로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노인이거나 중장년이었고, 우리 부부를 제외하면 젊은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동반한 손님은 그들 뿐이었고, 아이는 헤드폰 없이 매우 큰 소리로 미디어를 시청하며 밥을 먹었어요. 아이의 부모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어폰을 낀 채 맛없는 칼국수를 씹으면서 대한민국의 많은 사회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장면 속에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날은 여러모로 운이 좋지 않았나봅니다. 이후에 갔던 카페에서는 방금 받은 커피를 모두 쏟아 노트북에 조금 커피가 들어갔어요. 노트북은 문제 없었지만, 닦느라 고생을 하고 커피도 다시 주문해야 했습니다. 저녁엔 이전에 맛있게 먹었던 고깃집에 갔는데 무슨 일인지 여러모로 식당이 엉망이었습니다. 반찬 그릇은 설거지가 깨끗하게 되지 않았는지, 반찬을 재활용한건지, 아니면 가져다준 직원의 손이 지저분했는지 그릇에 양념 얼룩이 여기저기 남아있었어요. 우리는 이미 입맛을 잃었지만 이전에 분명 맛있었으니 일단 고기가 구워지길 기다렸습니다. 불판에 올리기도 전에 고기의 색깔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둘 다 입 밖에 그 말을 꺼내진 않았어요. 그러나 나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어서, 구워진 목살의 맛은 형편 없었습니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돈을 내고 굳이 사먹을 맛도 아니었죠. 우리는 매우 실망했고, 모처럼 고기 외식이라 기대했던 남편은 특히 슬퍼했어요.

  밤 아홉 시엔 갑자기 약과가 먹고싶더라고요.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해 출출했던 탓입니다. 남편은 팝콘을, 나는 약과를, 탄산음료까지 곁들여 실컷 먹었습니다. 바야흐로 가속노화의 밤입니다! 실컷 먹고나니 후회가 몰려옵니다. 일요일인데 평소보다 자는 시간이 늦어졌고, 배가 너무 불렀어요. 기분이 울적하고, 식탐이 늘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후에 곧 월경이 시작될거란 뜻이지요. 괜히 먹었나봐, 하는 나에게 남편은 그런 날도 있는거라고 합니다. 맞아요. 운수 나쁜 날, PMS(생리전증후군)까지 겹쳤으니 이런 날도 있는겁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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