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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울 Apr 02. 2024

혼자서 잘 지내는 법

아침편지 14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이렇게 준비해주는 것을 본 뒤로 남편이 따라하고 있습니다.



  상쾌한 아침! 일주일 사이 완연한 봄에 접어든 느낌입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고, 개나리도 활짝 피었습니다. 성격 급한 벚꽃도 하나 둘 피기 시작했으니 이번 주말이면 만개할 것 같아요. 봄은 아주 짧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즐겨야 합니다. 그래서 토요일엔 남편과 한강 공원에 가기로 며칠 전부터 약속을 했는데, 미세먼지가 아주 심하더라고요. 보통~나쁨도 아니고 '매우나쁨' 이었습니다. 빨간색 글씨를 보고도 야외에서 종일 머무를 순 없으니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어요.

  사실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낮까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찾지 못했어요. 그냥 기분이 가라앉고, 심지어는 눈물까지 나더라고요. 실컷 잘 있다가 자려고 누웠는데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고, 눈을 감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는데 진짜 이상했어요. 울기까지 하다니? 대체 왜? 그렇게 이유를 모른채 울다가 잠들고, 조금 부은 눈으로 일요일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남편이 빵과 땅콩버터, 우유로 간단한 아침 상을 차려놓고 나를 깨웠습니다. 몸을 일으켜 식탁에 앉아 시계를 보다가 아침에 운동을 가기로 했다는 사실이 생각났어요. 10시 수업이니 늦지는 않았지만, 예약해둔 수업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좋아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건, 나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되고 나를 돌보는 방법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여기저기 에너지를 쓰고 다니거나,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옳지 않은 길을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래서 절대로 가지 않을거예요. 나를 잘 돌보는 방법을 배우느라 20대를 다 썼습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조금 아쉬운 선택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그 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걸 압니다.

  이제 나는 화가 났을 때 심호흡을 여러번 합니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습니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 때는 명상 가이드 영상을 틀고 따라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면 걷습니다. 이게 가장 효과가 좋아요. 화가 날 때 뿐만 아니라 우울할 때도 도움이 됩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씻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우울은 물보다 바람에 더 잘 씻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책을 찾아 읽습니다. 운전을 해야하거나, 당장 책을 읽기 힘들 때는 오디오북을 듣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밤새 별 생각을 다 하며 괴로워하지 않고 잠에 들고, 다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마침 아침 운동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으니 충분히 걷고, 몸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운동 가는 길 30분, 운동하는 시간 50분, 다시 돌아오는 길 30분. 약 2시간의 시간동안 가볍게 몸을 움직이면서 마음이 역시나 조금 가벼워집니다. 점심에는 김밥과 쫄면을 포장해서 먹고, 저녁은 비싼 갈비를 파는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맛있는 걸 먹는 것도 도움이 되니까요. 그럭저럭 마음을 추스리고 밤이 되어 다시 자려고 누웠습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든 혼자서 잘 해서, 우울하거나 화났을 때도 혼자 마음을 추스리는 내가 조금 안쓰럽더라고요. 나는 나의 독립적인 성격을 좋아합니다. 혼자 해내는 모든 것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런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나 참 외롭겠다 싶더라고요. 물론 그 생각도 아주 짧게 스쳐가듯 하고 나는 편안하게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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