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헨리 배 Henry Bae Feb 21. 2021

우리의 인간관계를 위해

아들러 심리학으로 본 인간관계의 기본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회에서 관계를 형성합니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 또래들과 부딪히며 사회성을 습득합니다. 직장에서는 동료와 협력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사업은 말할 필요도 없죠. 혼자 일한다고 생각하는 작가조차도 편집자와 함께 일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이상 인간관계는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는 평생의 숙제입니다.



인간관계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 때문이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의 말입니다. 인간관계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만 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러의 말처럼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줍니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힘든 건 일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의 51.2%가 퇴사하는 진짜 이유를 숨겼다고 하며, 밝힐 수 없었던 퇴사 사유 1위가 바로 '상사/동료와의 갈등'이었습니다.

비단 비즈니스에서만 인간관계는 고통일까요? 학창 시절, 친구와는 어떠셨나요? 즐거운 기억도 많지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고통받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줘야 할 가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죠.

그렇다고 인간관계가 우리에게 고통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인간관계 덕분에 우리는 크고 작은 행복을 경험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칭찬을 받았을 때, 소중한 사람과 여행을 갔을 때, 가족과 함께 웃으며 대화를 나눌 때, 늦은 밤 연인과 함께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볼 때 등 우리는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 때문이다." 아들러는 이 말 뒤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복 또한 인간관계 속에 있다."



우리의 인간관계를 위해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때로는 고통을, 때로는 행복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기분 좋은 일상을 위해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잘하는 방법에 대한 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대표적인 책이죠.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의 명저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우리에게 인간관계를 위한 30가지의 원칙을 제시합니다. 관계의 시작부터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인간관계의 정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인간관계를 더 잘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기술 이전에 철학이 있듯, 그런 방법을 활용하기 이전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아들러의 제안


아들러 심리학을 기반으로 쓰여진 <미움받을 용기>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라.' 그리고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고통받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받는다.'

아들러는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고,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인간관계의 기본으로 보았습니다.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먼저 분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나의 과제는 무엇이고, 타인의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과제는 무엇이고, 타인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


기본적으로 나의 과제는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선택하고,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떠한 말을 하고,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그 자체가 나의 과제입니다.

타인의 과제 또한 동일합니다. 그의 생각, 그의 말, 그의 행동, 그의 일상, 그의 삶은 그의 과제입니다.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개념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분리와 개입입니다.

그의 생각, 그의 말, 그의 행동은 타인의 과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분리하고 있나요? 개입하지 않고 있나요?



문제는 분리


타인이 나의 과제에 개입해선 안 되듯이, 나 또한 타인의 과제에 개입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타인의 과제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 시선에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또한 타인이 내 말에 따르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이런 일은 상급자와 하급자, 연장자와 연소자, 부모와 자녀 같은 수직적인 관계에서 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권리가 없습니다. 타인이 내 말에 따르든, 따르지 않든, 그 선택은 타인의 과제입니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는 것이든, 타인을 통제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든, 이 둘의 원인은 다른 듯하지만 동일합니다. 모두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과제의 분리는 도움에 있어서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을 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도움이 선일까요?

자녀가 무언가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그것을 재빠르게 해결해주는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이는 자녀를 위한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모의 그런 태도가 자녀의 독립심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배려와 도움은 선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과제를 분리하지 못한다면요.

2011년 9월 16일에 열린 'UN 세계 평화의 날' 행사에 김연아 선수가 참여했습니다. 당시 김연아 선수의 옆에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자리했는데요.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탓에 마이크를 켜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의 비서마저 마이크를 켜지 못하자, 김연아 선수가 그의 비서를 바라봤고, 비서가 도와줘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자 도움을 주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해당 기사)

저는 이와 같은 김연아 선수의 행동에 정말 성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김연아 선수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바로 도와주었을 겁니다. 저도 그랬을 겁니다. 그러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도움을 원하지 않았다면 어떨까요?

내가 원하지도 않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꼰대라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상대가 원하지 않는 도움은 상대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습니다.



이기주의가 아닌 건강한 개인주의


과제의 분리라는 표현은 극단적인 느낌을 줍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 이기주의에 대한 용인이 대표적인 느낌일 겁니다. 그러나 아들러가 말한 과제의 분리는 그런 느낌과는 다릅니다. 과제의 분리는 서로를 독립된 존재로서 존중하라는 의미입니다.

나의 생각이 중요하듯이, 타인의 생각도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 그것은 나의 몫이며, 타인이 어떤 삶을 살든 그것은 타인의 몫입니다. 타인이 나의 삶을 통제할 수 없듯이, 나 또한 타인의 삶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과제를 분리하여 독립되고 대등한 관계로서 관계하면, 인간관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타인의 삶은 타인의 몫이니, 통제가 아닌 영향을 끼치고자 할 겁니다. 타인의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타인의 과제이니, 강요가 아닌 제안을 할 겁니다. 특히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함으로써 보다 나답게 살 수 있습니다.

과제의 분리는 무관심과 이기주의가 아닌, 건강한 개인주의를 추구합니다.



마치며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철학이 없는 기술은 사람을 해칠 수 있듯이, 그저 인간관계에 대한 기술만 습득하는 것은 관계의 건강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아들러가 말한 과제의 분리는 건강한 관계를 쌓기 위한 좋은 토대가 됩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입니다. 인터넷 댓글은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상처 주는 말로 가득합니다. 서로를 독립된 존재로서 대등하게 관계하라는 아들러의 주장은 이런 때일수록 더욱 필요한 사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본 섬김의 리더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