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면

너의 오늘과 나의 옛날을 잇다

by 시샘달 엿새

2017

“태리야, 오늘은 시장에 갈까?”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엄마가 시장에 가자고 하셨다. 시장 구경은 재미있다. 오랜만에 나들이도 하고 엄마가 맛있는 것을 사주시기 때문이다. 맛있는 과일도 많이 사고 요구르트 수레가 있으면 타요 주스도 먹을 수 있다. 오늘 뻥튀기 아저씨가 계시면 알록달록 뻥튀기도 사자고 얘기해야겠다. 내가 더 어릴 때는 유모차에 편하게 앉아서 시장에 가면 이모 삼촌들이 아기가 놀러 왔다고 반겨주셨다. 덤으로 얻는 과일과 과자는 늘 내 차지였다. 주목을 받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늘 그렇듯 예쁘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다.


좀 컸으니까 오늘은 연두색 장바구니를 가져갈 예정이다. 엄마가 또 열심히 준비하신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기고 나도 옷을 예쁘게 입었다. 나가기 전에 장바구니와 토끼 인형을 챙겨 엄마와 함께 시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그냥 걸어보려고 한다. 엄마 손을 꼭 붙잡고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걷는다. 신호등에 도착했다. 초록색으로 바뀌자 다양한 빠방들이 다들 멈춘다. 나는 엄마 품에 잠시 안긴 채 한 손을 들고 빠르게 건넜다. 다시 손을 잡고 걸어보았다. 씩씩하게 잘 걷는다고 끊임없는 칭찬이 이어진다.


시끌벅적 시장 소리가 가까워진다. 제일 먼저 채소 가게에 들렀다. 오늘도 엄마는 오이, 토마토, 상추를 고르셨다. 그런데 늘 계시던 채소 가게 아저씨가 안 보인다. “우리 공주 오늘도 장바구니 들고 왔어요?”라며 반겨주시고 호주머니 속 과자도 주시곤 했는데. "엄마, 아져찌 어디쪄?" "글쎄, 오늘은 아저씨 쉬는 날이신가?" 매번 부끄러워 엄마 뒤에 숨었지만 날 예뻐하시는 아저씨가 오늘은 안계시니 어딘가 서운하다. 이곳저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내 장바구니를 보시고 탐내신다. 어쩜 이런 게 있느냐고 토끼 한 마리 산 거냐고 웃으시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상추를 넣어 달라고 하셨는데 여기에는 과자를 넣어야 하니 비워둬야 한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을 걸어 보았다. 할머니들이 앉아서 채소를 다듬으신다. 초록색, 하얀색, 초콜릿색 채소를 하나씩 구경하다 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게를 만날 수 있다.


하얀색 통 안에 꽃게가 마구 움직인다. 그 옆에 새우는 춤을 격렬하게 췄는지 땅에 튀어나와 있었다. 엄마는 무섭다고 하는데 나는 이 꽃게가 너무 신기해서 계속 보고 싶다. 엄마가 저쪽 가면 또 뭐 있다고 하신다. 그래도 내 눈에는 꽃게만 보인다. 자꾸 재촉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는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더 구경해본다. 갑자기 엄마가 뽀로로 주스를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바로 일어섰다. 주스 사러 가는 길에 탱글한 도토리묵과 내가 좋아하는 바지락 살도 사서 장바구니가 가득 찼다. “엄마, 알록달록 까까는 어디쪄?” 우리는 열심히 찾았지만 아쉽게도 뻥튀기는 없었다. 더 사고 싶지만 엄마는 짐이 많다고 주말에 아빠랑 오자고 하셨다.


드디어 주스 사러 가는 길. 초록색 뽀로로 주스는 시장에 있는 가게에서만 살 수 있다. 오늘은 엄마가 주스를 두 개나 사주셨다. 장바구니에 하나 넣고 하나는 지금 당장 먹어야 한다. 계속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다. 엄마 손에 짐이 많아 보인다. 힘들어 보이니 잠시 놀이터 의자에 앉아서 쉬다 가자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나는 주스를, 엄마는 커피를 마시면서 바람을 쐬며 쉬어본다. 날씨가 좋다. 집에 가서 오늘은 바지락을 넣은 부추전과 도토리묵무침을 먹을 예정이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토마토 주스도 먹을 수 있다.



1987

어렸을 때 시장은 학년이 올라가거나 설빔이나 추석빔처럼 명절을 앞두고 옷을 사러 갔던 기억이 뚜렷하다. 몇 군데 정해진 아동복 가게에 들어가 엄마는 나에게 옷을 고르라고 하셨지만 엄마의 선택으로 구매가 거의 이루어졌다. 언젠가 한 번은 정말 예뻐서 눈을 떼지 못했던 분홍 원피스가 있었는데 엄마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보신 것인지 이거 사고 싶으냐고 하셔서 얼떨결에 원하는 옷을 산 기억이 생생하다. 유치원 재롱잔치를 준비하며 필요한 옷을 사러 갔을 때도 특별한 기억이 있다. "매니큐어 꼬마가 발랐지?" 헉! 어떻게 내가 바른 걸 알고 계신거지? 엄마의 매니큐어가 탐나서 내 손에 몰래 몰래 바르곤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고 아저씨의 탐정같은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가까운 슈퍼에서 장거리를 보시긴 했지만 주부에게는 주기적인 시장 일정도 무척 중요했다. 외출 준비에 화장하시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무언가를 잔뜩 사서 양손에 까만 봉지가 가득한 상태에서 엄마의 새끼손가락을 동생과 함께 하나씩 잡고 타박타박 집에 오던 길이 떠오른다. 어떤 날은 작은 엄마와 함께 가기도 하고, 무더웠던 여름날에는 버스가 아닌 택시를 타고 집에 오면서 800원 택시비를 기사님께 동전으로 드리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다녔지만 시장 가는 것이 좋았던 걸 보면 그곳에서 물건을 사고 먹거리도 즐기면서 나도 모르게 즐거운 곳으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커가면서 그곳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마트가 더 편하고 음식도 가끔씩 하니 시장은 굳이 찾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니 다시 시장이 좋아졌다. 주말에 아파트 알뜰 시장이 서면 벼르던 채소를 마음껏 사고 한여름 더워에도 분식점에 들러 떡볶이와 순대로 주말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 아기가 좋아하는 알록달록 뻥튀기도 사면서 방금 튀어나온 동그란 뻥튀기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언젠가 옆 아파트 알뜰 시장 소식을 입수를 해서 매주 요일에 맞춰 꼭 그곳에 들렀다. 우리 아파트에는 없는 돈가스를 튀겨주는 집이 있어서 참 좋아했는데,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를 기다리며 뭐가 또 있는지 호기심으로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두부 가게에서는 기성품과는 전혀 다른 도토리묵의 탱글함과 손두부의 따뜻한 고소함을 살 수 있었고 이는 저녁 걱정을 덜어주어 매주 알뜰 시장을 기다리는 날이 많아졌다.


이사를 하고 익숙해진 예전의 알뜰 시장은 없지만 새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있는 전통 시장에 위안을 느꼈다. 요일을 맞추지 않아도 시장을 갈 수 있다니 나에게도 신나는 일이었다. 채소 가게는 지금의 계절을 보여주기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현금을 넉넉히 가져가서 구경을 하다 보면 욕심이 생겨 그 이상으로 가져오는 풀 무더기에 무슨 음식을 만들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날이 많다. 단골로 찾는 채소 가게 아저씨는 언제나 정성을 함께 주신다. 바리바리 바구니가 터지도록 많이 사면 너무 무겁지 않도록 짐을 알맞게 나눠주신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채소가 비 맞지 않도록 이중삼중으로 꼼꼼히 내 바구니를 꾸려 주신다. 가끔 먹는 떡이나 늘 맛있는 과일을 진열하는 가게까지 무게의 방해만 없다면 시장은 언제나 좋은 곳이다. 계절이 바뀌고 늘 가던 시장에 이상하게 사람들이 더 많은 날은 어느새 명절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일깨워준다.


아이와 함께 걷는 시장에서 활력을 얻고 여유도 즐겨본다. 손안에 스마트폰으로 손가락질 몇 번이면 집 앞에 장바구니를 가져다주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도 사람이 북적이는 시장은 이런 편리함이나 깔끔한 마트와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사람을 이끌기에 시장은 언제나 가보고 싶은 곳이다. 어제 갔어도 오늘 가보고 싶고, 내일도 궁금한, 시장은 정겨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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