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달픔.
사람은 자신만의 슬픔을 이고 사는 존재.
글의 주제가 행복한 기억인 이유.
만들 수만 있다면*
도종환 詩
만들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남길 수만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기억만을 남기며 삽시다
가슴이 성에 낀 듯 시리고 외로웠던 뒤에도
당신은 차고 깨끗했습니다
무참히 짓밟히고 으깨어진 뒤에도
당신은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사나운 바람 속에서 풀잎처럼 쓰러졌다가도
우두둑 우두둑 다시 일어섰습니다
꽃 피던 시절의 짧은 기쁨보다
꽃 지고 서리 내린 뒤의 오랜 황량함 속에서
당신과 나는 가만히 손을 잡고 마주서서
적막한 한세상을 살았습니다
돌아서 뉘우치지 맙시다
밤이 가고 새벽이 온 뒤에도 후회하지 맙시다.
유난히 감정에 휩싸이는 날,
그럴 때 나를 일으켜주는
다섯 살 아이의 눈치 없는 발랄함
백일 넘은 아기의 무구한 미소.
다시 채운 힘으로 준비하는
우리의 아침.
햇사과 두 쪽씩
얼음을 넣은 원두커피 한 잔씩
으깬 감자구이 하나씩.
* 도종환 시집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