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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Sep 23. 2021

삶은

삶은 고달픔.


사람은 자신만의 슬픔을 이고 사는 존재.


글의 주제가 행복한 기억인 이유.




만들 수만 있다면*


도종환 詩


만들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남길 수만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기억만을 남기며 삽시다


가슴이 성에 낀 듯 시리고 외로웠던 뒤에도

당신은 차고 깨끗했습니다

무참히 짓밟히고 으깨어진 뒤에도

당신은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사나운 바람 속에서 풀잎처럼 쓰러졌다가도

우두둑 우두둑 다시 일어섰습니다


꽃 피던 시절의 짧은 기쁨보다

꽃 지고 서리 내린 뒤의 오랜 황량함 속에서

당신과 나는 가만히 손을 잡고 마주서서

적막한 한세상을 살았습니다

돌아서 뉘우치지 맙시다

밤이 가고 새벽이 온 뒤에도 후회하지 맙시다.




유난히 감정에 휩싸이는 날,

그럴 때 나를 일으켜주는


다섯 살 아이의 눈치 없는 발랄함

백일 넘은 아기의 무구한 미소.


다시 채운 힘으로 준비하는

우리의 아침.


햇사과 두 쪽씩

얼음을 넣은 원두커피 한 잔씩

으깬 감자구이 하나씩.


* 도종환 시집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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