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병찬 Mar 27. 2023

"토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94.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학교에 간 지 2시간이나 지났을까 싶었는데 담임 선생님에게서 아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머리카락이 쭈삣 섰다. '무슨 일?'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조퇴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예?”

“아이가 배 아프다고 하고 열도 있으니 병원에 데리고 가보세요.”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전화를 끊고는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갔다. 다행히 재택근무 중이었다.

아이는 크게 아픈 것 같지는 않았다. 아랫배를 만지며 불편을 이야기하는 정도였다. 열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장염 때문에 여러 차례 고생했던 터라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아이는 긴장하거나 위축되면 복부 통증을 호소했다. 그걸 참고 있다가 장염으로 발전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바이러스성 장염에도 취약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친구들 사이에서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걱정할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약도 처방해주지 않았다. 안도했다.

교문 앞에서 학원 차를 기다리며 간식으로 허기를 때운다.

슬그머니 부아가 났다. 예전 ‘나 때는’ 사실 이런 일로 학부모를 찾는 경우는 없었다. 선생님이 잘 다독이거나, 상태가 안 좋으면 학교 양호실에 데려갔다. 양호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교실로 돌아가거나 양호실에서 쉬었다. 그것으로 안 될 경우에나 부모를 호출했다. ‘나 때는’ 일단 등교한 이상 학교 또는 담임 선생님이 아이의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요즘 학교는 이렇게 바뀌었나?”

이틀 뒤 반별 학부모 총회가 있었다. 첫모임이니 빠질 수 없었다. 어떤 선생님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담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입을 연 정도가 아니라 찬바람이 쌩 도는 연설을 했다. 1학년 담임은 처음이라든가, 과학을 전공해 대학원까지 나왔다던가, 그래서 고학년만 가르쳤고 또 고학년 수업에는 자신 있지만 1학년 담임은 체질에 맞지 않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들을 맡은 지 한 달도 채 안 됐지만, 요즘 아침마다 학교에 출근해야 하나 마나 고민한다고도 했다. 학부모의 이해와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긴 했지만, 학부모로선 어안이 벙벙했다.

원생을 기다리는 학원 차들

담임의 하소연인지 통지인지 모를 훈화가 끝나자, 잔뜩 주눅들었던 학부모들이 하나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아이가 선생님께 도움을 호소했는데, 선생님이 도와주지 않더라는 내용의 이야기가 많았다. 한 학부모는 용기를 내 이렇게 따지기도 했다. 한 아이가 제 아이에게 욕도 하고 괴롭혀 선생님께 호소했는데 왜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발끈했다. “저 나름대로 조치는 취했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른다.” 선생님은 가해 학생의 실명까지 대며 “아이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담임이라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회의에는 선생님이 지목한 ‘가해 학생’의 부모도 참석해 있었다고 한다.

다른 학부모가 불만을 이어갔다. 제 아이가 다른 아이와 부딪혀 넘어져 교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고, 아픔을 호소하며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선생님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은 “아이가 하는 말 다 믿지 마세요”라고 다시 발끈하더란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더 나왔지만, 선생님은 단호했다.

사실 담임 선생님 혼자서 천방지축 뛰고 떠드는 아이들 22명과 하루 네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속된 말로 벼룩이 서 말을 몰고 서울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선생님은 자신이 해결하기 힘들거나 부모가 알아야 할 때면 해당 부모에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학생 22명 가운데 스무 명의 학부모가 그런 전화를 받았을 거라고 했다. “제가 전화를 하지 않으면 아이는 잘 지내는 것으로 알고 계시면 됩니다.” 학부모들은 찍소리 못했다.

학원이 끝나고서야 봄을 느낄 수 있다.

학부모 총회 이튿날, 피아노 교습을 마친 아이와 눈높이 학원으로 걸어가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주원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처음 갔을 때 배가 아프곤 했잖아.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 긴장하고, 친구들과도 서먹서먹했을 때 말이야.” “응.” “엊그제 아파서 병원에 간 것도 그 때문이었어?” “아니.” “학교엔 짓궂게 구는 아이가 없어?” “응, 두 명 있는데, 우리 반 아이는 아니야.” “다른 반 아이가 어떻게 짓궂게 굴지? 교실에 왔다갔다 해?” “아니야. 밥 먹을 때 있잖아.” “그렇구나, 학식 먹을 때는 같이 먹지.” “밥 먹을 때 애들이 나한테 장난치고 하는데, 난 걔들한테 눈도 안 돌려. 모른 척하니까 아무 일 없어.”

“주원이 시나몬 인형을 두고도 놀리는 아이가 있다고 하던데. 시나몬 바이러스가 퍼져 감염됐다나 뭐라나?” “있긴 있어. 지금은 괜찮아. 몇 번 그러다 말았어.”

문제의 그 아이에 대해서도 물었다. 앞자리 친구를 발로 때리기도 하고, ㅇㅇ이라고 욕도 해 문제가 생겼다는 그 아이, 욕하는 걸 듣고는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는 그 아이 말이다. “응, 그 아이 이름은 한 글자야. ㅇ이라고. 성이 두 글자야. 걔도 나쁜 아이 같지는 않아. 선생님이 마음이 아픈 아이라고 했어.” “그래? 주원이가 이해심이 많구나.”

목련 꽃잎 하나 들고 엄마에 안겨있으니, 살 것만 같다.

묻다 보니 하래비가 되 가지고 아이를 고자질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찔린다. 그래도 시작은 했으니 마저 물어봐야겠다. “다른 짓궂은 아이는 없어? 응, 두 아이가 있는데, ㅁㅁ이의 연필이나 지우개를 몰래 가져다 교실 냉장고 밑에다 숨겼어. 한 아이는 거기에 붙은 이름표를 떼서 화장실에 버리고.” “장난이 심한 아이구나.” “주원이한테 그런 일 생기면 어떻게 할까?” “~~.” “그럴 땐 힘들어도 얘들에게 꼭 말을 해야 해. 그래선 안 된다고. 너희 연필과 지우개를 누군가 숨겨놓으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 “알았지?” “응.”


이렇게 지내고 싶은데~. 선생님 도움으로 그린 토끼.

“근데 ㅇ이가 오늘(목요일) 학교에 안 왔어.” “그래? 왜 안 왔을까? 어제 학부모 총회에 아이 엄마도 참석했다고 하던데~” “응~, 누가 그러는데 경찰에 갔다고 하더라고.” 아이들끼리 하는 이야기였겠지만 아이는 걱정이 많아 보였다. 그 아이는 금요일에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는 지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회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곳엔 예전보다 훨씬 더 많고, 더 다양하고,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한편으론 어울려 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부딪히고 경쟁한다. 개중에는 패거리짓고 군림하려드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아이는 이제 실감할까? 나이 먹는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빨리 토요일이 왔으면 좋겠어. 쉬고 싶어.”

“학교 다니기가 그렇게 힘들어?”

“그건 아닌데, 쉬었으면 좋겠어. 학교 가는 건 좋아.”

그래, 얼마나 힘들까. 다 큰 어른도 힘든 게 사회생활이다. 게다가 어른은 다니지도 않는 학원을 아이는 두세 군데씩 뺑뺑이 돌아야 한다. 초등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아이가 그렇게 다녀야 할 학교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그 소중한 시간들을 꼭 이렇게 보내야 하나?     

작가의 이전글 덜렁이의 첫 등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