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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O May 17. 2022

저는 소방관의 딸입니다.

여섯 번째 편지 _대한민국의 모든 소방관 아버지들께

어린 시절의 저는 아버지를 무서워했습니다. 

특히, 고된 화재 현장을 다녀오신 날이면 아버지는 극도로 예민하고 날카로웠습니다. 이유를 알지 못하고 종종 장난을 치다가 혼난 적도 많습니다. 그때 라디오에서는 사건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저는 조용히 눈치를 보느라 바빴습니다. 아버지가 민감할수록 집안의 공기는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이유 모를 민감함과 분노의 잔해는 오롯이 가족들의 몫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제가 본 아버지는 마치 거대한 화마를 품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보호자 아래 양육된 자녀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결핍과 부족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의사소통이 부재할수록, 가족 전체에는 부정적인 긴장감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아버지의 모습은 늘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한때는 화재 현장을 수습하다가 전기에 감전되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이렇게 죽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울부짖으면서 살려달라고, 이렇게 다치면 어떡하냐고, 갓난아이와 나 혼자만 두고 갈 수 없다고 애원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늘 불안과 초조의 그늘 밑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개 소방관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자발적으로 가족들에게 공유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양상입니다. 소방관 가족 또한 언제 가족들 곁을 떠나게 될지 모른다는 마음을 항상 품고 있습니다. 어린 저는 원인도 모른 채 그저 울고만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갔던 그 날, 어머니의 통곡이 울려 퍼지던 그 날은 이 세상 누구보다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이 하늘에 가득 찬 슬픈 날이었습니다.      


가끔 새벽이 되면 아버지가 큰소리로 욕을 하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발버둥을 치면서 잠을 깨시곤 합니다. 
자다가 귓가를 울리는 큰 소리에 놀라서 일어나면 아버지는 제게 험한 꿈을 꿔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외상에는 짜증, 분노 표출과 같은 여러 경험뿐만 아니라 수면 문제도 함께 나타납니다. 아버지는 자주 피곤해하거나 잠을 깊게 들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휴일이 되면 이따금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보통은 아버지가 밀린 잠을 보충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아이의 눈으로는 아버지가 어떤 심리적 상태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어린 저는 아버지가 그저 미우면서도,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아버지의 소방관 동료 중에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거니와, 소방관의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률은 높은 수치로 나타납니다. 그런 말을 들은 저는 걱정되는 마음에 아버지가 자는 방에 몰래 들어갔습니다. 코 밑에 손가락을 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하기도, 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모른 채 잠든 아버지 곁에서 울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수많은 장면을 목격합니다. 
시체가 시커멓게 녹아 타버린 모습, 피투성이가 되어있거나 혹은 팔이 떨어져 나간 사람의 모습, 목매달아 자살한 사람의 모습과 같은 순간들을요. 현장의 탄내가 아직 몸에 배어있는 것처럼 느껴져 평소 일상생활에서도 시각, 청각, 후각 등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꿈에도 이런 심리 상태가 반영되기도 합니다. 심리적으로 긴장된 상태를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한동안 아버지는 사건 현장에 여전히 몸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셨습니다. 이러한 외상 경험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딸인 저는 아빠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지만, 아빠가 느끼는 외로움과 제가 느끼는 두려움이 서로를 멀게 느껴지도록 만들고 있었습니다.


상담심리학 공부를 하며 제 자신, 그리고 아버지의 외상에 대한 증상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왜 아버지는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저 또한 기저에 있는 불안한 정서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1차 외상 경험은 또 다른 2차 외상 경험을 겪게 하며, 이 경험을 가족 구성원 전체가 알게 되는 것 자체가 서로를 이해하는 수단이 됩니다. 소통을 통해 서로 치유하는 경험은 상처에 머무르는 것을 넘어, 곁에서 도와줄 수 있다는 가능성의 경험이 됩니다. 이는 가족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나아가, 소방관과 가족 모두가 함께 외상에 대한 이해와 개인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수적입니다.

국민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묵묵히 홀로 견디셨던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공감가는 내용이 있으셨나요?

소방관이기에 겪게되는 힘든 사건에 대한 기억들
가족에게 걱정을 끼칠까봐, 홀로 견디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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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조직과 별개로 운영되며 개인 인적사항, 근무지를 묻지 않습니다.

*개인사, 가정, 트라우마, 동료관계. 아주 작은 고민이라도 hearO와 나눠주세요.

*소방관인 나를 이해하는 상담사가 영웅의 소중한 이야기를 듣고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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