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번째 편지_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119 구조대원은 신이 아닌 인간이므로 인간의 생과 사, 죽음과 삶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의 일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난겨울,
예년 같았으면 모두가 들떠있을 설 연휴인데도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향에 가지 못한 듯합니다.
1년에 두어 번뿐인 명절, 태어나고 자란 곳,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한 아쉬움이 클 텐데 방역 지침 준수를 위해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납니다.
119 소방센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24시간, 365일을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기에 명절에도 휴무 없이 근무합니다. 어디 멀리 떠나거나 움직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 일의 특성상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도 여지없이 야간 근무에 편성됐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 저녁 출근 후 업무를 인계받을 때 주간 근무 팀장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20대 청년이 화명 대교에서 뛰어내렸는데 온종일 수중 수색했지만 보이지 않았네.
야간에는 수중 수색이 힘들 테니 김 팀장이 아침에 해가 뜨면 한번 수색해줘.”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피곤함에 절은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 팀장님의 표정에서도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근무지인 이곳, 낙동강에서는 자살 사고가 자주 발생합니다.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차가운 강물에 던집니다. 더러는 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죽습니다.
빨리 찾는다면 모를까, 물속 깊이 가라앉은 사람을 살리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이때부터 죽은 자의 몸을 찾기 위한 구조대원의 사투가 시작됩니다.
더군다나 겨울철 강물 온도는 빙점에 가까워지는데, 겨우 2도 정도 되는 물속으로 잠수하면 살벌한 추위가 뼛속까지 사무칩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시간이 갈수록 구조대원의 몸도 얼어붙습니다. 그런 물속에 수도 없이 몸을 담갔습니다. 팀장이 된 지금은 팀원들을 지휘하기 위해 물에 잘 들어가진 않지만, 겨울철에 수중 수색하는 후배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이고, 산 자든 죽은 자든 물속에 있는 누군가의 몸을 반드시 수습해야만 합니다.
깊은 밤을 보내고 새벽 동이 트자마자 강으로 나갔습니다. 최초 신고자이자 목격자가 지목한 투신 위치로 보트를 몰았습니다. 그곳 어디쯤 뛰어내렸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알고 있는 사고 정황의 전부였습니다. 막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넓고 깊은 물 속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막막한 마음을 애써 외면한 채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곧바로 1차 수색에 돌입했습니다.
수중 탐색 로봇(ROV : Remotely Operated Vehicle)을 이용한 1차 수색 과정에서는 구조대원이 직접 물속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음향 탐지와 영상 탐지가 동시에 가능한 ROV로 강바닥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하지만 강한 바람과 빠르게 흐르는 강물의 유속 탓에 ROV를 조종하기 어려웠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구조 보트는 강물의 유속에 밀려 계속해서 떠내려갔습니다. 특히나 ROV는 보트가 고정된 상태에서 조종되어야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더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강하게 불어오는 영하의 강바람은 구조대원의 손을 얼어붙게 했고, 점차 무디게 했습니다. 장비를 세밀하게 조종해야 할 구조대원의 몸이 점점 힘겹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팀 모두가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렸음을 직감했습니다.
팀장으로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단 철수하자. 조금 있다가 바람이 잦아들고 낙동강 수문이 닫혀 유속이 느려지면 그때 다시 하자.”
무엇보다 후배들의 건강이 염려되었습니다. 엄혹한 시국이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건강이 최우선이던 때였기에 감기만 걸려도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후배들의 단호한 대답이었습니다.
“팀장님. 한 번만 더 해보겠습니다. 구조 보트만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주십시오.”
후배들의 표정에 비장함이 어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보였습니다.
그 즉시 구조 보트를 조종하는 후배에게 ‘보트를 다리 교각에 바짝 붙여서 흐르는 강물을 옆으로 맞으며 교각 기둥에 보트를 고정하자’라고 했습니다.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모험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자칫 배가 뒤틀리기라도 한다면 고가의 구조 보트가 크게 훼손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바닥에 닻을 던져 고정한다고 해도 보트가 빠른 유속으로 인해 계속해서 밀렸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서너 번의 실패 끝에 겨우 보트를 교각에 밀착시킨 뒤 고정했습니다.
그조차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팀장님, 유속이 빨라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일단 최대한으로 안전하게 고정해볼게요.”
구조 보트를 조종하는 후배는 엔진 기어를 전, 후진하며 강물과 맞섰습니다.선미나 후미, 어느 한쪽이 더 길게 교각 밖으로 나오기라도 하면 바로 물살에 휩쓸려 배가 뒤틀릴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보트가 비교적 안정을 찾은 그 순간, 즉시 ROV 투입을 지시했습니다.
“시간이 없다. 강물이 흐르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추위를 견디기도 힘들어지고 있어. ROV 수색을 단시간에 끝내야 한다. 딱 15분이야. 딱 15분! 15분만 해보자. 그래도 없으면 철수해야 한다.”
ROV 수색에 사활을 걸고 마지막으로 팀원들을 독려했습니다.
물속에 던져진 ROV 로봇은 다행히 빠른 유속을 헤치고 물살을 가르며 하강해 들어갔습니다. 이제 뭐가 되었든 사람의 형체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10여 분쯤 흘렀을까요, 마음은 급해지고 수색 중단을 결정하려던 찰나였습니다. 시커먼 무언가가 ROV의 본체 화면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멈춰! 저거다!”
본능적으로 소리쳤습니다. ROV를 조종하는 후배가 로봇을 물체 가까이 붙였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다음으로 검은색 옷을 입은 몸체가 보였습니다.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로봇 팔을 이용해 ROV를 사람의 옷깃에 고정했습니다.
이제 직접 들어가야 했습니다. 급하게 준비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고정된 ROV가 유속 때문에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후배들에게 잠수 준비를 재촉했습니다. 후배들은 재촉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장비를 착용한 뒤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가 했던 임무였지요. 팀장이 되고, 물 밖에서 그들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고 나서야 비로소 깊고 차가운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임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후배들이 내쉬는 공기 방울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만 뭍에서 바라보며, 부디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5분…. 10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들어갈 땐 2명이었던 후배들이 3명이 되어 물 밖으로 올라왔습니다. 우리가 애타게 찾던 젊은 청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창백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몸을 보트 위로 올렸습니다. 장비를 정리하는 후배들의 얼굴이 벌겋게 얼어있었습니다. 실핏줄이 다 터진 얼굴 위로, 청년의 몸을 가족에게 돌려보낼 수 있다는 작은 자부심이 일렁였습니다. 몸이 상하기 전에 찾아 다행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 그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이 일을 하며 단 한 번도 현장을 쉽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임무를 수행한 적이 없었습니다.
구조 현장은 늘 우리 편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하기에 언제나 긴장한 상태로 현장에 임합니다. 그러므로 구조대원들은 평소 스스로 몸을 단련하고 기술을 익힙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구조대원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한 젊은 청년의 귀환이라는 결과를 만든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경험들로 미루어 보아, 늘 그래왔던 것 같습니다.
119 구조대원은 신이 아닌 인간이므로 인간의 생과 사, 죽음과 삶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의 일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을 찾는 일보다 후배의 건강이 더 염려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수색 중단을 결정하였다면 후배들이 다시 따뜻한 사무실로 돌아와 몸을 녹일 수도 있었을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랬다면 젊은 청년은 누군가가 자신을 찾을 때까지 차가운 강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었겠지요. 중요한 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후배들의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찾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은 눈에 보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소방관들에게 DNA처럼 새겨진 마음과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요. 모두가 물러서는 곳에 우리는 들어가고, 모두가 포기하는 일을 우리는 해내야 합니다. 그 일을 가능케 하는 것,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 일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됩니다.
-작은 고민이라도 괜찮아요, 따뜻한 공감과 전문 상담을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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