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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O Jul 19. 2022

소방관으로 일하며 감사한 것

열여섯번째 편지_무겁지만 유쾌, 힘겹지만 산뜻한 긴장감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깊이의 욕구 속에서 헤엄치고, 그것을 좇으며 갈망한다.

이러한 인간의 추상적인 욕구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인물이 바로 매슬로인데,

그는 욕구를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매슬로우 5단계 욕구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간의 생리적 욕구인 수면, 배변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됐을 때 비로소 다음 욕구인 안전을 갈망하고, 안전의 욕구가 갖춰진 후에야 그 다음 욕구를 찾는다는 얘기다.

이러한 매슬로의 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 존경은 욕구의 여러 단계 중 상위권에 있다.


누군가에게 존경받고 싶은 욕구는 다른 것에 비해 얻기 쉽지 않으며 그만큼 가치가 크다.



감사하게도 소방관들은 여기저기서 따스하고 좋은 인상을 받는다.

소방관으로서 일하며 느끼는 많은 인상 중 하나는 사람들이 소방관을 많이 존중해주고 배려해준다는 것이다. 주황색 소방 활동복을 입고 일하다 보면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많은 호의를 느끼게 된다. 주황색 소방복을 입고 활동할 때면, 평상복을 입었을 때와는 또 다른 따뜻한 눈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따스함이 늘 감사하다.


출처 _ 헤드라인 제주


소방관으로 일하다 보면 공공기관이나 소방대상물에 안전교육이나 훈련을 갈 기회가 종종 생기는데, 이때 나는 조그만 꼬마들에게 감사함을 많이 느낀다. 언젠가 우리 센터 근처 초등학교에 소방안전교육을 간 적이 있었다. 사실 초등학생들에게 소방 교육을 한다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루 종일 뛰어놀아도 에너지가 차고 넘치는 초등학생들에게 책상이 아닌 운동장에서 자그마치 몇십 분 동안 집중해주길 바라는 것은 애당초 큰 욕심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대피 훈련을 실행함과 동시에 반 친구들끼리 왁자지껄 놀기 바빴고, 더러는 흙장난을 하며 아예 고개를 바닥에 파묻다시피 했다. 결국 대피 훈련 이후 예정된 안전교육 중 소화기 사용법은 대부분 선생님의 몫으로 돌아갔다. 소화기 교육을 마친 뒤엔 화재진압 시연이 있었다. 일부러 쌓아놓은 장작에 빨갛게 불이 붙고 회색 연기가 하늘로 폴폴 날리자, 장난기 가득하던 아이들은 순간 정적이 되고 일제히 그 불구덩이에 관심이 쏠렸다. 운동장 측면에 부서해둔 소방차에선 기다렸다는 듯 음성이 흘러나왔다.


“메인밸브 개방, PTO 작동”


소방차가 내뱉는 위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떠들썩하던 운동장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혹시나 큰 소리가 나진 않을까 싶어 겁을 잔뜩 먹고 귀를 막는 아이들도 있었다. 귓구멍을 바짝 막은 작은 손가락 끝은 피가 쏠리지 않아 하얗게 질리기도 한다. 하지만 소방차에서 시원한 소리와 함께, 장작더미를 관통하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올 때면 이내 아이들은 “와아!” 하며 입을 떡 벌리고는 웃음인지 놀라움인지 모를 표정을 짓곤 방방 뛰기 시작한다. 어떤 아이는 폴짝폴짝 뛰다 못해 친구들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기도 했다. 거대한 물대포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패잔병처럼 타버린 까만 장작이 흰 연기를 씩씩대며 뿜어내고 있었다. 나머지 잔불은 아까 교육을 들었던 선생님들의 몫이었다. 하얀 분말이 장작더미로 내려앉아 잔불을 차갑게 식혔다.


덕곡초등학교 소방훈련 _ 고령인터넷뉴스


센터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문득 먼 옛날 운동장에 서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났다. 몇십 년 전, 아주 오래전이지만 어제처럼 선명한 기억이다. 그게 빨갛게 타오르던 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당시 소방관 아저씨가 입고 있던 옷이 당시 내 눈에 너무 인상 깊어서였을까. 소방관 아저씨가 소화기에서 쏘아 올린 하얀 소화약제가 내 작은 몸을 송두리째 덮어버릴 것만 같던 그때, 먼지처럼 하얀 가루가 풀풀 날리던 그때의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 소방관이 될 거라 생각했을까. 지구상에 저렇게 거대한 물줄기가 있는 것이 신기했고, 소방관 아저씨가 입고 있던 방화복이 꽤 멋있었다.


그 후로 종종 출동을 나갈 때나 업무 운행을 나갈 때 마주치는 초등학생들은 소방차를 빤히 쳐다보거나 손을 흔든다. 앵두처럼 귀여운 눈망울로 고사리 같은 손을 바쁘게 흔든다.

그러면 나도 반갑게 창문 밖을 향해 손을 흔든다.


아이들이,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런 따뜻한 시선들이 늘 고맙다.


난 여전히 여리고 어린 소방관이지만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무겁지만 유쾌하고, 힘겹지만 산뜻한, 그런 기분 좋은 긴장감이다.



유튜브 _ 하염없이 손흔드는 아이에게 119소방관님 반응

https://youtube.com/shorts/nuoETV8hN-o?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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