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번째 편지 _ 믿을 수 있는 동료와 함께한다는 것
이제껏 내가 살면서 가장 다양한 사람을 마주했던 곳은 군대였다.
내가 있던 부대는 서울에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했던 강화도 포 5대대 7중대. 북한과 5km 이내에 인접해있던 이곳이 내가 살면서 여태껏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다시 만났던 곳이다. 직업, 출신을 막론한- 전국 각지에 있던 다양한 사람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입대 전 전국대회를 휩쓸었던 레슬링 프로였던 후임은 나를 체력단련장에서 종잇장처럼 손쉽게 넘겼다. 제주에서 온 내 동기는 자기 관물함에 늘 쌓여있던 귤을 몇 번 쓱 만져보곤 하나를 건넸는데, 그 귤은 늘 꿀처럼 달았다. 뱀이 나타나는 계절이면 연병장과 포상을 뛰어다니며 뱀을 잡아 가죽을 뜯곤 그걸 보란 듯이 계급장 뒤에 반듯하게 붙이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선임도 있었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가까이 있고 싶은 사람도, 멀리하고 싶은 사람도 많았다.
군대는 내가 여태 살면서 가장 많은 인간 군상을 한데 모아 섞어 놓은 듯한, 비빔밥 같은 곳이었다.
물론 소방서에서 생활하며 만난 사람들 또한 만만치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방서 사람들은 닮고 싶지 않은 사람보다 애써 닮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내가 센터에서 만난 소방 동료들은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정말 많다. 소방관으로 일하며 내가 처음 느꼈던 감정은 ‘세상에 사고가 이렇게 많구나’하는 놀라움이었다. 소방관으로서 살지 않았던 시간이 소방관으로서 사는 지금보다 수십 배는 더 길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현장에서 맞닥뜨린 사고가 훨씬 많다. 민간인이던 수십 년보다 소방관으로 일한 조금의 시간 동안 맞닥뜨린 사건사고가 월등히 많은 것이다. 아직 한 해도 넘기지 않은 햇병아리인 내가 이 정도인데, 선임들의 소방 생활은 얼마나 다사다난했을까.
팀장님의 옛날얘기를 들어보면 경악할 만한 사건사고가 정말 많다.
팀장님의 모든 얘기를 가감 없이 담기엔 처절한 이야기들이 많아 그중에 한 가지를 최대한 희석해서 얘기해보겠다. 지금은 펌프차를 타는 팀장님이 예전에 구급차 기관원을 하던 시절이었다.
팀장님은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을 했다.
도로에서 보행자와 차가 부딪힌 사고였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예삿일이 아니었다.큰 사고는 도착했을 때 현장의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짙은 피비린내 같은 무거운 분위기가 공간에 감돈다.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구조대상자를 목격했을 때 보자마자 사망을 짐작하는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으로 사후강직이나 시반, 심각한 상해를 입었을 때다. 그때 현장 상황은 심각한 상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사고자는 차에 부딪혀 사지가 멀쩡하지 않았는데 특히 두개골이 심하게 깨져있었다. 한눈에 봐도 생사를 구분할 수 있을 만한 정도의 참혹함이었다. 팀장님은 조용히 차에서 내려 사고자를 수습했다. 시신은 물론 깨진 두개골도 함께. 사람의 골격 가장 바깥 부분이 뼈로 구성된 이유는 신체 내부에 있는 비교적 부드럽고 연약한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렇게 강한 머리뼈마저 부서졌으니, 그때 시신의 상태는 차마 설명하기도 힘들 정도로 참혹했을 것이다.
분명 주황색 소방복을 입었을 때 현장에서 나오는 초인적인 힘은 있다.
우리를 지켜보는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거대한 책임감이 든다.
그런데 우리도 소방관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아프고 힘들 때가 있다.
정말 참기 어려운 현장이 존재한다. 얘기를 듣던 나조차 상상만으로도 힘들어 팀장님께
“시신 수습하는 게 힘들진 않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가족들께 드려야지,그분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
조금이라도 온전히 드려야지”라고 나직이 말하셨다.
팀장님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시신을 모두 수습한 후에 유가족에게 전달해주시고 나서야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한 분은 구급대원 선임분이었다.
그 선임 반장님은 가장 아픈 기억이 영아 심정지 출동을 나갔을 때였다고 했다. 구급대원들에게 물으니, 출동지령서에 찍힌 구조대상자가 영, 유아 이거나 10대 등 적은 나이일 때, 고령자 출동보다 더 긴장된다고 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환자를 봤을 때 좀 더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구급대원인 선임 반장님은 그날 영아 심정지 출동을 다녀온 뒤
한동안 밖에서 인형을 차마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조그맣고 연약한 인형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지금은 어떻게 출동 나가십니까?”하고 물으니
“괜찮더라.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또 괜찮아지더라.”라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 시간이 얼마의 깊이인지 나는 알 길이 없었으나
그 대답 속엔 꽤 길고 축축한 시간이 있었을 거라 내심 짐작했다.
그 선임 반장님은 늘 출동벨이 울릴 때마다 툴툴거렸지만 묵묵히 구급차를 탔다.
또 어느 날에는 출동을 무사히 다녀오곤 유난히 행복한 표정으로 “좋다”고 얘기하셨다. 호흡이 어렵다던 노약자 보호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그 긴박한 현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정과 언어였다. 선임 반장님은 그 출동을 다녀온 뒤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고 한참을 골똘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까 갔던 그 출동을 다시 복기하고 다시 학습하는 듯했다.
센터에서 만나는 이런 선임분들을 보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닮고 싶어서 계속 말을 걸고, 배우려 하게 된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눈만 봐도 그 기운이 남다르다.
한 번이라도 얘기를 더 꺼내고, 더 물어보고 싶다.
그러다 보니 힘든 게 있으면 기꺼이 말하고 싶은 사람도 동료이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려울 때 가장 세심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와 줄 것만 같은 사람도 동료다. 죽을 만큼 힘든 상황에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다가와 줄 사람들도 결국 이런 동료일 거라 확신한다. 소방서에 오기 전에 봤던 다양한 사람 중에서는 선인과 악인이 동시에 있었다면, 소방서 온 후 내 주위에 있는 동료들은 선인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이런 동료들 곁에 있다 보면 험하고 힘든 현장도 썩 나쁘진 않다는, 기분 좋은 착각을 하게 된다.
-소방관인 '나'를 이해하는 상담사의 따뜻한 공감과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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