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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ie Apr 19. 2021

매일 무너진다

꾸역꾸역 가까스로 하루하루


 침대에 기대있던 아빠는 갑자기 “살기 싫다”는 말을 툭 던졌다.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다고. 이 힘든 과정을 겪고 나서도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엄마는 약한 소리 하지 말라며 역정을 냈다.


  아빠는 대뜸 자신에게 격려를 많이 해달라고 했다. 엄마는 지금껏 우리의 격려가 부족했냐고 물었다. 아빠는 그런 게 아니라 오늘처럼 마음이 약해질 때 격려를 해달라는 뜻이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을텐데 결국 지쳐서 나를 귀찮아하지 말아달라”는 말로 들렸다. 


 휴약기때 겨우 기운을 차려 산책을 나갔던 아빠는 산책 도중 내게 비슷한 말을 했었다. 투병이 길어지면 가족들도 처음과 달리 다들 귀찮아한다고. 10년 투병 끝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들이 내심 후련해 했었다고도 고백했다. 난 그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이고, 늘 아빠를 보살피고 걱정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이날 밤 몰래 울었다. 잠을 청하러 간 줄 알았던 엄마는 불이 다 꺼진 안방에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며, 아빠가 죽고나면 엄마는 어떻게 사냐고 울었다. 예후가 좋으면 2~3년 산다는 의사의 말도 싫다고 했다. 평생을 주말 부부로 살아온 엄마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엄마의 흐느낌이 커지자 태산이는 누워있는 엄마 어깨 위에 앞발을 턱, 놓았다. 엄마는 그런 태산이를 껴안고 “아빠 좀 살려줘”라며 소리내 울었다. 나는 태산이를 껴안고 우는 엄마를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진 부모님을 뒤로 하고 한 달 뒤면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 하필이면 복직하는 주에 아빠는 마지막 항암에 들어간다. 항암치료가 끝날 때까지 곁에 있고 싶지만, 직장을 내팽개칠 수는 없는 일이다. 3주의 마지막 항암 치료를 끝내고 나면 결과를 알게 된다. 대략 6월 중순 쯤이다.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빠 말처럼 그대로거나, 최악의 경우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졌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암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아빠는 생의 불확실성에 내던져졌고, 그 속에서 매일 허우적대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숨통을 쥐고 놓아주지 않는 기분이다. 매 순간 무너지는데, 무너져 있으면 도리가 없으니 겨우겨우 일어나 서있는 느낌이다. 


 신께 기도한다. 이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허무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빈다. 우리 아빠 좀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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