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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곳독서 Feb 13. 2021

설날 선물은 역시 레고

이번엔 해리포터 마법책 시리즈

우리 집에 레고가 많은 이유

제가 어릴 때는 설날 선물로 레고를 받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레고는 비싼 선물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많은 경쟁자(?)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제 어린 시절인 80~90년대에는 대부분의 가정에 2명에서 3명 정도의 자녀가 있는 것이 보편적이었어요.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할머니가 계시는 곳에서 모든 친척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삼 형제 중에 둘째셨는데, 삼 형제의 아이들이 모이는 명절에는 총 7명이 아이들로 북적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모두 레고를 선물 받기는 어려웠겠죠? 취향도 달라서 싸움이 일어나기도 쉬웠을 거예요.


하지만 요즘은 명절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친가와 외가를 모두 합쳐도 아이는 저희 아들 혼자예요. 출산율이 낮다는 말이 명절 때 더욱 실감합니다.  덕분에 6년 동안 경쟁자 한 명 없이 양가의 사랑을 저희 아들이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독점적인 사랑은 한동안 더 이어질 것 같네요. 이런 환경의 혜택으로 아들은 명절 때나 생일에 원하는 선물을 마음껏 받습니다. 작년 설날에는 레고 선물만 5개를 받았어요. 친가, 외가에서 각 1개씩, 동생 부부와 처남 부부가 각 1개씩 그리고 저도 1개를 사주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이 삶을 살아가는 아들이 가끔은 부럽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설날 선물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서 친가도 외가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이기 때문이죠. 세 식구인 저희는 어딜 가든 5인 이상이 되기 때문에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합니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보고 싶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못 만나고 직접 세뱃돈과 선물도 받는 못하는 슬픈 명절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큰 추억인 하루하루가 사라져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세배는 영상통화로 대신하기로 하고, 아들의 세뱃돈은 미리 계좌로 받았습니다. 이 세뱃돈을 언젠가는 아들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서 차곡차곡 모아줄 생각입니다. 그래도 올해까지는 레고를 사는데 쓰기로 합니다. 물론 받은 세뱃돈 전부를 레고 사는데 쓰지는 않겠지만,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이니 아들이 원하는 커다란 레고를 사 주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번엔 해리포터 마법책 시리즈

지난번 글에도 적었지만, 아들이 레고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벤저스 시리즈입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어벤저스 레고 시리즈를 수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저는 캡틴 아메리카나 아이언맨이 더 멋진데 말이에요.


이번에는 아빠의 욕심을 가득 담아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들, 아빠는 이번에 해리포터 시리즈가 멋지게 나온 것 같아. 그 마법책 시리즈 말이야."

아들은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음... 제가 전부터 생각해둔 스파이더맨을 살까요?"

저는 포기하지 않고 더 큰 레고로 관심을 돌려봅니다.

"아빠는 해리포터 호그와트 기차도 좋을 것 같아. 상자도 크고 멋있잖아."

아들이 긍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응. 아빠. 그것도 좋지만, 일단 가서 고를게요."


첫 번째 레고 가게를 들어갔습니다.(설날 기념으로 두 군데의 레고 가게를 갔어요) 제가 생각했던 해리포터 호그와트 기차는 없네요. 아들은 자연스럽게 어벤저스 레고 쪽으로 향합니다. 아빠의 말은 기억도 나지 않는지 원래 사기로 했던 스파이더맨과 고스트 라이더가 있는 레고를 집어 듭니다. 그리고는 당당히 말하네요.

"아빠! 저는 전부터 생각했던 스파이더맨으로 살래요."

역시나 예상한 흐름이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돌려보려고 한마디 던져봅니다.

"아들. 해리포터 마법책 시리즈는 어때? 이번에 새로 나온 신상인 것 같은데..."

예상하셨겠지만, 제 회유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스파이더맨을 계산을 하고 첫 번째 가게를 나섭니다.


제가 처음에 쉽게(?) 물러선 이유는 그다음 목적지가 있었기 때문이죠. 2주 전에 레고 매장을 갔을 때 '호그와트 기차'가 여러 개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제 마음속으로 아들의 설날 선물로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심 가득한 생각이죠. 두 번째 목적지로 향하면서 아빠와 아들은 손을 꼭 잡습니다. 아빠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들을 또 새로운 레고를 살 즐거움에 부풀어서 말이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단골 사장님께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둘은 서둘러 목적지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제가 생각했던 그 기차가 없습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없네요.


급하게 사장님께 여쭈어봅니다.

"사장님. 지난번에 있던 해리포터 호그와트 기차 다 나갔나요?"

사장님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시네요.

"그럼요. 그런 제품은 인기가 있어서 들어와서 얼마 안 지나면 바로 다 팔려요."

아들과 저는 동시에 대답합니다.

"그것 사러 왔는데요."

레고 부자는 잠시 충격에 휩싸입니다. 아들보다 아빠의 충격이 더 컸는지 한동안 멍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레고를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그리고 선심 쓰듯이 이야기하네요.

"아빠, 우리 새로 나온 해리포터 마법책 사요."


이 정도는 혼자 만들 수 있어

이제 이 정도는 아빠 도움 없이 혼자서 만들 수 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스파이더맨 조립을 가뿐하게 마치더니, 목욕 후에는 해리포터까지 조립을 하겠다고 합니다. 저녁 9시 30분인데 말이에요. 내일 오전에 아빠랑 천천히 만들자고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레고 포장 봉지를 뜯기 전에 서둘러 시작시간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저녁 9시 27분.


혼자서 만들기 시작합니다. 지금부터는 저도 여유로운 독서시간을 갖습니다. 아들 옆에 앉아서 휴대폰은 할 수 없지만 책은 볼 수 있어요. 아들은 레고를 만들고 아빠는 책을 읽습니다. 이 고요한 시간이 그 어떤 시간보다 행복합니다. 아내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그렇게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났을까요. 꼼짝하지 않고 레고를 만들던 아들은 혼자서 해리포터 마법책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중간중간 스티커를 삐뚤게 붙여지거나 블록이 제대로 맞지 않을 때는 아빠의 도움을 잠시 받기도 했지만 말이에요. 설날 선물도 역시 레고입니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사는 즐거움과 만드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지 않을까요?


Tip. 레고 구입의 타이밍

사실 오늘 아침까지도 '해리포터 호그와트 기차'를 찾아서 인터넷 공간을 헤매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이미 품절이네요. 해외 사이트에는 몇 군데 보이는데 가품인 것 같은 것도 있고 배송비가 상당합니다. 2만 원이 넘는 배송비를 투자해서 이 레고를 사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레고는 나를 위한 선물이 아니라 아들을 위한 선물이다. 지금 이 기차를 사는 것은 나를 위한 선물이지 않나? 그 생각과 함께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레고 구입의 타이밍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려고 합니다.


레고는 분기별로 신제품이 나올 때 사는 것이 좋습니다. 레고 매장에 전화해서 신제품 발매일을 확인할 수도 있어요. 분기별로 살 때 이게 '소장가치'가 있느냐는 스스로 고민해봐야 합니다. 해리포터처럼 덕후가 많은 레고는 금세 물건이 다 팔립니다. 호그와트 성이나 기차 같은 것은 10만 원대가 넘어가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시즌이 지나면 구하기 어렵습니다. 웃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경우도 발생해요.


신제품이 아닌 경우는 물건이 확보됨과 동시에 더 빠른 판단을 해야 합니다. 물건이 많다고 방심하거나 가격이 비싸다고 잠시 고민하면, 제가 호그와트 기차를 놓친 것처럼 좋은 레고를 놓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아들보다 제가 더 레고에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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