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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Nov 24. 2020

코끝이 시려올 때, 단팥호빵과 초코우유

집밥요정 오소리의 사실은 요리하기 싫었던 어느 날

겨울이 성큼 다가오는 걸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리는 건 편의점 주인 아저씨다. 편의점 안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나를 기다리는 동글동글한 호빵이 찜기에 누워 있고, 노릇노릇 군고구마가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말없이 돌바닥 위에서 익어갈 때, 다시 한 번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가을이 지나간 길에서 겨울을 맞이하는 건 팔랑개비 같은 낙엽 몇 장이 달랑거리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걸려 있는 잿빛 도는 파랗게 질린 하늘. 이 추위엔 아침해도 일어나기 싫은지 일곱 시가 되도록 창밖이 깜깜하고, 그래서 더 이불 속에서 움츠러들고, 나가서 기지개 펴며 하품을 하면 입김이 나오고, 김 서린 창에 낙서를 하고 싶지만 차가운 유리창에 손끝을 대기는 망설여지는 시린 공기. 너희 집도 이번 김장 잘 했냐며 안부를 건네고, 첫 서리와 첫 눈을 기다리는 가운데 이렇게 올 한해도 저물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추위가 스멀스멀 일상에 잠식해 오고 일조량이 줄어드는 시기가 되면 나만의 작은 의식을 갖곤 한다. 일년에 딱 한 번, 따끈하게 쪄낸 단팥호빵에 초코우유를 먹으며 올 한 해를 돌아본다는 거창한 미명으로 추위도 녹여버릴 단맛에 온몸을 내어맡기는 것이다. 

곱게 갈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보드라운 팥소에, 겉은 쫀득 속은 말랑말랑한 채 새하얀 김을 내뿜는 호빵을 한 입 베어물고, 네모 반듯 각 잡힌 우유곽의 한 켠을 조심스레 뜯어 초코우유 한 모금을 머금어 본다. 이다지도 적극적인 단맛이 주는 것은 피자호빵 야채호빵의 후추맛 따위가 결코 줄 수 없을 극단의 평온함. 


올 한 해도 고생 많았다, 언젠가 이 겨울을 돌이켜 생각할 때, 비로소 그 어린 아이같은 단맛에도 기뻐할 수 있었던 순수함과 그 날의 코끝 시린 추위를 추억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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