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의 오소리 Mar 04. 2021

스무디, 통째로 갈아 마셔야 시원한

집밥요정 오소리의 글쓰기 (6)

돌이켜 보면 스무디에 대한 첫 기억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생과일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작된다. 딸기 스무디를 만들 때, 냉동 딸기가 죽어라 안 갈리는 바람에 우유와 시럽을 조금씩 섞어 가며 꽝꽝 얼어붙은 딸기를 녹이느라 낑낑댔었다. 그 때 이후로 냉동딸기의 냉동실 냄새에 질려버린 나는, 나는 생딸기가 나오는 딸기철이 아니고서는 딸기음료를 먹지 않게 되어버렸다. 제조음료에 얼마나 설탕시럽이 많이 들어가는지를 알고부터는 꼭 시럽을 빼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하튼 그 알바를 통해 다양한 과일이 들어가는 아이스크림의 레시피를 보면서 조합을 연구해볼 기회를 얻었고, 맛있는 맛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스무디를 자주 해 먹게 된 건 자취를 시작하고부터였다. 과일도 야채도 좋아하지만 끼니마다 챙겨 먹는 것도 귀찮고, 조금씩 자주 먹는 것만으로는 많은 양을 오래 보관하기도 힘든 데다 깎고 다듬고 껍질 처리하는 건 더더욱 귀찮았다. 그런 나에겐 한번에 재료를 다듬어 놓고 그때그때 갈아 먹으면 되는 스무디가 제격이었다. 날 잡아서 껍질과 씨를 싹 정리하고 깍뚝썰어 보관해 두면 그 뒤로는 설거지도 거의 안 생기고, 갈아먹을 때마다 믹서기랑 텀블러만 씻어 놓으면 되니 신선함과 효율을 동시에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설탕시럽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탓에 밖에서 사먹는 생과일 주스도 여간해서는 내키지 않던 터라, 안심하고 내가 먹고 싶은 재료만 넣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메리트 중 하나였다. 


작은 디테일의 차이에 따라서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어, 나름의 스무디 레시피를 만들어 나가는 것 또한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단순히 오렌지, 사과, 바나나, 딸기 등 한 가지씩 갈아 먹는 것부터 시작했지만, 신메뉴 개발을 시작하게 된 건 지인의 농장에서 얻어온 블루베리 덕이었다. 시럽을 안 넣고도 이걸 맛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한 끝에, 바나나와 요거트를 넣고 갈아먹거나 요거트에 꿀을 더해 신맛을 잡아주는 게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외에도 딸기+바나나+우유, 바나나+견과+두유, 사과+시금치 등의 잎채소+요구르트처럼 구하기도 쉽고 대중적인 조합으로 일단 무언가를 함께 넣고 먹는 데에 맛을 들이다 보니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보고픈 욕심이 생겼다. 


과일을 이용한 단맛, 신맛의 조합에 익숙해지고 나니, 야채를 더해 건강한 맛을 내는 데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사과에 오렌지 주스를 부어 갈아내면 세상 더없이 상쾌한 천연 소화제이자 맛있는 주스가 된다. 바나나와 셀러리 잎에 두유를 넣고 갈면 향긋 달달한 풀맛이 나지만, 여기에 견과류를 더해 갈아낸 뒤 하룻밤을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면 셀러리 잎의 향긋함에 바나나의 단맛과 견과류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세상의 모든 간식과도 바꿀 수 없는 중후한 맛이 난다. 이런 소박한 재료로 내가 만든 스무디 따위에게 유혹당하는 느낌이라니! 


이 밖에도 우유, 두유, 플레인 요거트, 오렌지주스 중 무엇을 베이스로 쓸지, 꿀이나 견과류 혹은 오트밀, 치아씨드나 레몬을 추가할지에 따라서 상당히 다양한 종류를 만들어낼 수 있다. 



* 2018년, 수정함.

매거진의 이전글 기껏 만든 볶음밥을 쏟았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